여러모로 무던했던 나와 모든 면에 최선을 다한 너.
왜 그래? 더 열심히 해봐. 죽을각오로.
내가 알아봐줄테니까. 이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관련 교육들이….
아니, 난 그 부분은 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고마워.
왜 안하려고 해? 정신차리고 제대로 해야지!
노력의 역치가 맞지 않았다. 나와 B는. 지금까지 못해본 적이 거의 없던 B와 자주 못 해왔고 도망도 쳐왔던 나. 내 앞에서 여러 교육들과 예시들을 미친들이 나열하는 그를 보면서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렇게까지 안 해줘도 되는데. 나도 필요하면 진작에 했을거고 그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는데. 나의 실패담을 들을때마다 그는 진심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그 해결책까지의 나의 행동 촉구를 위해 끊임없이 카톡과 전화를 해왔다. 친구가 잘 되길 진심으로 바랬고 그렇기에 나처럼 미적지근한 노력을 하는 사람이 당황스러웠을 것이다.
나는 항상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했고 그는 항상 그렇게까지보다 더 나갈 정도로 고려하고 계획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굳이’인 행동과 가치관 변화를 촉구하는 그의 말을 반 이상은 흘려듣고 즐겁게 놀다가 오곤 했는데, 결국 그게 그를 향한 예의가 아니었음을 나는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B는 나를 위했고, 진심으로 내가 잘되길 바랬다. 그의 주변에는 전부 잘 된 사람들밖에 없었으며, 그가 누군가와 싸우고, 누군가를 싫어할때는 ‘스펙이 모자라다’는 이유가 컸다. 그럼 굳이 스펙이 한참 모자라고 생각도 없는 나는 끌고 가서 밥을 먹이고 커피를 함께하고 전화해서 고민상담을 요청할 필요는 없었을 것 같은데. 나의 어떤 면이 그의 마음에 들었고, 그의 주변에 있기위한 조건인 ‘스펙’을 위해서 노력해줘야만 했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호전적이지 않다. 진득하게 하나만 할 수도 없다. 관심 없는 부분은 노력조차 잘 하지 않는다. 불편한 일이 있어도, 내 허용범위 안에 들어오면 들춰내지는 않으려고 한다. 사회적이나 범법적인 방향이 아니라면 굳이 해결해주려고 하지 않는다. 그 모든것과 반대였던 그는 나를 힘들어했다.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여기까지임을 알았다.
결국 이렇게 될 것이었군. 한심한 친구를 그는 옆에 둘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옆에 있기 위해 굳이 나를 바꾸는 노력까지는 하지 않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섭섭했을 수도 있겠다.
정말 미안한데 내 최선이였어 B야. 나는 너랑 있는 시간이 진짜 좋은데, 도저히 안되더라.
너는 더 높고 거친 세상으로 나아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