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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pr 07. 2022

'쟤'가 되기 싫어서 살아온 인생

내 안에 내가 너무도 없다.

친구가 고민상담을 했다. 두려워하는 것이 몇 개 있었다. 그는 A가 될까봐 B가 될까봐 C가 이뤄질까봐 D의 상황이 될까봐 두려워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할 말을 잠깐 잃었다. 그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A,B,C,D는 지금 내 삶이기 때문이다.

내 삶이 누군가에게는 죽도록 살기 싫은 삶이구나.

나는 ‘쟤’보다 나아의 ‘쟤’를 맡는 건 아닐까?

누군가가 부러워하는 삶은 언제 살게 되는걸까?

무엇보다 나는 평생 나의 ‘안녕’을 남의 기준에서 평가하는 삶을 살아갈까봐 무서워졌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나는 항상 중심에 남을 두었다. 남 신경 안 쓰는 척을 하고 싶었지만, 태생부터가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당연했다.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은 ‘공부하는 척을 하지 말아라’였다. 친척들부터 우리 부모님까지 남들을 굉장히 의식하면서 항상 보이지 않는 기싸움을 해댔고 첫째인 부모님 사이의 첫째였던 그냥 절대적 첫째인 나는 항상 새우등이 터졌다. 

그랬기에 반대로 남들을 의식하는 어른들을 극도록 한심해하는 어른이 되었지만, 그만큼 남들과 나 자신을 항상 비교하는 어른으로 컸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 나는 행복한 상상을 하면 ‘남의 눈으로 보는 나’의 시선으로 상상했다. 예를 들어보자. 수석으로 대학교를 졸업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보통 수석으로 졸업해서 학과장 상을 받고, 좋은 곳에 취직을 하고, 뿌듯한 나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아니었다. “와 쟤 대단해~ 수석이래~”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상상을 해왔다.

한두번이 아니라 나에겐 그게 당연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얼마나 곪아서 망가져 있었는지, 소름이 돋을 정도다. 나 자신의 상황을 상상할때조차 남들의 눈으로 내가 예상하는 시선으로 상상하고 있었다. 

상상을 할 때조차 나에겐 내가 없었다.


이런 말을 들었다.

“퇴근 후 간단한 맥주, 주말에 시간내어 혼자 온 카페, 길가에 핀 꽃. 그것들에서 행복을 찾지 못한다면 너의 일상은 구원받을 수가 없어” 

결국 구원은 식당의 물마냥 셀프였다. 누군가가 주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글을 썼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그 친구와의 대화를 생각하면 씁쓸하다. 불평을 계속 하고 싶다. 불평을 하다보면 듣고 있던 누군가가 그걸 해결해주지 않을까, 하는 착각을 하고 있다. 남들 시선을 배재하고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해본 적이 없다. 취준 기간때문에 찐 살로 사람들이 욕할까봐 살을 빼려고 했고, 남들 다 장학금 받으니까 나도 받기 위해서 공부했다. 

그래서 지금 연습중이다. 남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조금씩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고, 결심하고 있다. 길가에 핀 꽃으로 행복을 느끼며 활력을 갖는 내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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