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취준 생활 - 보상심리와 건강
앞에서는 나의 면접 고군분투기를 적어보았다. 저렇게 합격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 이후의 몇몇 면접들은 합격하지 못했고, 그렇게 가고 싶었던 대기업들은 전부 인사과들하고 인사(면접 봤단 뜻)까지만 하고 다신 들어가지 못했다.
그렇다. 나는 현재 직장을 갖고 있음에도 뇌에 힘을 잠깐 풀면 할 줄 아는 말이 “내가 현대와 엘지 면접을 몇 번이나 봤는데 말이야”인 “현대 엘지 갈 뻔한몬”같은 울음소리 나 내고 있다. 하다 못해 포켓몬뿐 아니라 지나가는 참새라도 울음소리는 과거의 영광을 말하지 않는데 나는 훨씬 더 퇴보한 영장류인 셈이다.
지금 있는 곳은 신입이 시작할 수 없는 특이한 위치를 나에게 주었다. 나같이 a부터 z까지 다 알아야 적성이 풀리는 전형적인 프로젝트형 인간에게 여기보다 좋은 곳이 없다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았고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최종적으로 선택을 끝까지 밀고 나갔었다. 그런데 여전히 연봉과 네임밸류를 웅얼웅얼하는 썩은 인삼이 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보상심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시간이 없는 이들을 위해 내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이 보상심리는 쓸데없다. 그 말을 쓰기 위해 이 긴 글을 적었다. 세상이 주는 결과는 내 고생, 간절함과는 관련이 나와 어린 왕자의 고향 소행성 B612만큼 없다. 다만 내 고생과 간절함은 도전과 행동,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원하는 구체적인 방 안으로 이어졌고 그 모든 시도가 어떤 결과든 일단 랜덤으로 줬을 뿐이다. 그 랜덤 결과만이라도 나는 감사하게 여겼어야 했다.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가 그 사막에서 어린 왕자라는 구원을 만날 수 있었던 것처럼. 모든 불시착한 조종사가 소행성에서 온 그 왕자를 만나지는 못할 테니.
보상심리와 비교는 내 인생의 pain point이자 평생 함께해왔고 앞으로도 함께해갈 동반자일 확률이 높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서약을 거의 이 자식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젠장.
여하튼, 취업준비를 하던 2년 동안 나는 부끄러운 일들을 많이 벌렸다. 내가 자초한 것들도 있고, 의도치 않게 멀리서부터 날 강타한 일들도 있다. 내가 자초한 일들은 보통 이 보상심리로 이루어졌다. 내가 노력한 시간과 강도 대비 결과가 같거나 더 크지 않아서 억울한 마음에 벌인 일들이다.
가장 무서운 사실은, 이런 보상심리는 뒤틀려서 내게 ‘허세’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 덕에 돈도 쥐뿔도 없지만 모아놓은 돈은 좀 있던 20대 중반은 배달음식과 같이 사는 친구들에게 없어 보이기 싫어서 같이 무언가를 사고 먹는데 그 돈을 쓴 바람에 쥐뿔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는 20대 후반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취업준비 2년을 한 시간보다, 그렇게 써버린 돈이 더 아까워서 미치겠다. 그 ‘없어 보이기 싫어서’함께 쓰고 ‘힘들고 지친 와중에 먹고 싶은 거까지 참기 싫어서’ 생긴 폭식증으로 어떻게든 또 써버렸다. 돈은 줄어들고 살은 늘어서, 건강을 해칠 정도의 체중까지 늘어나서 지금 고생하고 있다. 사회가 살이 찐 젊은 여성에게 주는 시선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 것이다. 이로 인한 스트레스는 또다시 폭식과 소비로 이어졌다. 왜냐면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보상을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보상심리의 폭주는 다행히 무언가를 깨달아서 멈췄으면 좋겠지만. 그냥 쓸 돈을 다 쓰고 더 이상 몸무게가 늘어날 곳이 없고 나서야 통장 잔고와 몸무게의 숫자를 보고 강제 종료가 되었다.
나 너무 힘든데, 힘드니까 보상이나 구원 어디서 안 오나?
안 온다. 내 감정과 행동을 서로 인과 어디로도 연결하지 않고 살아가는 태도가 구원이 되었고 그 시간의 보상이 되었다.
어제 피곤했으니 오늘 늦게 일어난다, 따위가 아니라 어제는 피곤했고 오늘은 제때 일어난다가 되기까진 시간이 걸렸다.
한 번에 시험에 붙은 사람이나 3년 동안 시험공부를 한 사람이나 같은 시험에 붙게 되면 동기가 된다. 3년 더 고생했다고 더 빨리 승진이나 출발선을 세팅해주지 않는다. 그저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늦게나마 된 게 어디냐며 말이다. 마찬가지로, 서류 탈락한 사람이나 최종 면접을 탈락한 사람은 나란히 다시 다음 시즌의 공고부터 시작해야 한다. 면접까지 갔다고 다음 공고에서 서류를 패스해주지 않으며 운이 안 좋으면 오히려 면접까지 몇 번이나 갔는데 떨어지다니 어지간히 여기와 안 맞나 보군, 하고 인연이 안 될 수도 있다.
결국 이 보상심리도 남과의 비교에서 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거의 평생을 보이지 않는 경쟁자와 고군분투하면서 살아온 나는, 그 적이 나 자신이 되자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남들은 1년 해서 저 정도 직장을 갔으니 2 연한 나는 더 좋은 곳을 가야만 ‘정당한 거야’라는 착각. 앞으로의 미래를 꿈꾸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해왔던 고생에 의미부여를 말고 지금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해 집중하고 시작해야만 한다. 그게, 보상심리로 몇 년을 나를 망친 그 대가이자 최고의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