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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pr 01. 2018

나의 유후인.

비 오는 날을 더 좋아하던 내가  맑은 날도 좋아하게 되었다.


유후인을 다녀왔다.

2번째로 간 것이다.

처음에는 고등학교때 가족이랑 패키지로, 이번에는 친구들이랑 다녀왔다.

새삼스럽게 이 날만 맑았다. 유후인 가는 날만! 그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유후인은 맑을 때 가야 한다. 긴린코 호수도, 플로럴 빌리지도 그냥 모든 유후인의 곳곳이 하늘이 맑으면 매력이 배가 된다. 왜 이렇게 확신하냐면 흐린날의 유후인도 다녀왔기에. 유후인에서 1박 2일을 머무는 동안, 첫날을 흐리고 둘쨋날은 눈부시게 맑았다. 텐진이고 하카타고 모두 도시이기에 딱히 별 느낌이 없었는데 맑은 날의 유후인은 정말...정말.....! 자연이란 이런 것이다! 느긋함이란 이런 것이다! 청량함이란 이런 것이다!를 내 머릿속에 심어주는 느낌이다.

다른 날들은 모두 이랬다. 특히 마지막 날.

오랜만에 유후인 사진을 둘러보니 다시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친구가 찍은 플로럴 빌리지에 내가 필터를 입한 것. 고등학교때 갔을때도 여긴 그닥 별 감흥이 없어서 이번에 갔을 때도 그랬는데, 친구가 찍은 이 사진을 보니까 너무 예쁘더라. 왜 항상 지나치고 나서야 후회가 될까. 옆의 우산들만 알록달록한 색이라서 더 눈에 띈다. 왜 내 눈에는 그때 그 풍경이 이렇게나 예뻐 보이지 않았을까. 새삼 사람들의 눈은 각각 다른 것을 보는구나, 같은 것을 보고 있어도...하는 생각이 든다.

유후인은 대체적으로 이런 분위기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댁이 산청이다.

산청은 진주와 가깝지만, 그 분위기는 압도적으로 시골스럽다. 그리고 이 사진은 유후인이다. 순간 산청인 줄 알았다. 텐진이나 다자이후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치여왔던 터라, 나는 고등학교때의 그 느긋한 후쿠오카를 가고 싶어서 온 건데! 하고 속으로 부르짖고 있던 참에 유후인의 이런 분위기는 너무나도 반가웠다. 예전에 처음 왔을때는 오 진짜 짱구나 도라에몽에서 나오는 집이잖아! 하고 친구랑 희희거렸었는데, 몇 번 와 봤다고 이젠 이런 집들도 익숙해졌다. 아니 이 분위기가 내가 익숙한 곳이랑 비슷해서 그런가. 저 멀리에 교회만 있으면 딱 우리 할머니할아버지 댁이다. 동생들을 이끌로 걸어야만 할 것 같다. 실제로는 친구들 뒤를 쫄래쫄래 따라댕겼지만.

날씨가 맑아지기 전날의 긴린코 호수다. 사진첩을 아무리 뒤져봐도 맑은날(이 다음날)의 긴린코 호수를 찍은 사진을 찾기 힘들더라. 아마 너무 예쁜 그 광경에 넋을 잃었던가, 아니면 각자 자신의 인생샷을 찍기에 바빴던가....둘 다였던가. 둘 다였나 보다! 그래도 저 사진은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그 매력 나만 느끼는 것일수도 있지만... 저런 분위기가 딱 겨울스럽다. 그리고 정말 엽서나 다큐멘터리에 나올법한 분위기랄까. 물론 성수기이기도 하고, 사람도 많았지만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여기는 뭔가 소리가 묻히는 느낌이 있다. 일정 이상으로 소란스러워지지 않는 느낌. 허용하지 않는 느낌? 묘하게 압도하는 그런 느낌. 뭐래 아무말이다.

긴린코 호수 근처의 카라반 커피! 다른 글에서도 적었지만 갑자기 한국사람들이 들이닥쳐서 급 엔제리너스화가 되었다. 뭐 물론, 우리도 그런 분위기에 일조했겠지. 왜냐면 우리도 한국인이니까!하하! 비엔나커피를 제대로 먹어본 건 저때가 처음이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카페오레가 더 좋았다. 비엔나 커피는 끝 맛이 내 스타일이 아니랄까...음...뭐라 기억은 안 나는데 첫 맛은 진짜 우와!했는데 끝 맛은 흐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냥 내 입맛이 값싼 거겠지요. 사실 저는 막입이라 아무거나 잘 먹으니까요. 커피를 좋아하지만 그런 미묘한 무언가까지 캐치해낼 능력이 없으니까....흑흑


그렇게 다음날 날씨가 맑았다! 맑은 하늘을 가진 유후인은 너무나도 멋졌다.

물론 우리도 처음부터 이렇게 하늘이 맑을줄은 몰랐다. 이렇게 멋진 하늘이 펼쳐져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처음에는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긴린코 호수의 새벽안개가 올라피는 모습을 보겠다고 나섰다가

앞이 안 보여서 본전도 못 찾았다. 귀신이 안 나오면 이상한 분위기였음. 그래도 가는 길은 보이기라도 했지, 긴린코 호수 도착하니까 정말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아주 눈을 가늘게 뜨고 온갖 집중력을 발휘하면 토리이라던가 산장이라던가 아주 조금 아아아아주 조금 존재정도는 보이더라. 거기 있나요? 정도만 알겠더라. 돌아오는 길에 조금씩 안개가 사라지고 있긴 했지만.

완전히 갠 상황이다.

씻고 체크아웃하고 정리하려고 창 밖을 봤는데 갑작스러운 선샤인의 공격이!

와 이건 무조건 찍어야해! 하는 마음으로 다들 달려나가서 엄청나게 사진을 찍어댔다. 원래 긴린코호수를 갈 일정은 없었는데 맑은날의 긴린코호수라니!하면서 뛰어나가놓고 막상 긴린코 호수의 사진은 없다. 대체 뭐람. 정말 의식의 흐름의 여행이다. 햇빛이 이렇게 따뜻한 것인줄은 처음 알았다. 나는 사실 맑은날보다는 비오는 날을 훨씬 더 좋아하는데, 유후인을 다녀와서는 맑은 하늘을 보면서도 비 올때의 그 벅찬 느낌을 받곤 한다. 비오는 날과 동급으로, 어쩌면 그것보다 좀 더 맑은 날을 좋아하게 되었나 보다.


하늘이 너무나도 이뻐서 사진을 계속 찍었다. 청량함이란 이런 것인가,하는 감탄만 몇번째 하게 된다. 보통 맑은 하늘이란 구름 한 점 없어야 이쁜데 유후인은 구름이 많은 하늘이어도 이뻤다. 왜일까. 잘 모르겠지만 이뻤다. 구름 덕에 이뻤나. 구불구불한 나무들도 잘 어울렸다. 그 어떤 존재가 있어도 하늘은 같이 어울려줬다.

낄끼빠빠 못 하는 내 아임히어

1cm...무슨 시리즈더라? 여튼 거기서 나온 저 페이지가 살아가는 데 꽤나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어딜가든 저걸 쓰면 나름 있어보이거든! 그냥 내 만족이지만. 그냥 하늘도 예쁘고 우체통도 예쁘고. 모든 것이 마음에 들어서 찍었다. 사실 저거 들고 돌아다니면서 찍느라 계속 일행인 친구들과 거리가 생겼다. 내 발걸음은 느려졌으니. 그래도 내가 너무 멀어졌다 싶으면 앞에서 기다려줬으니 고마운 놈들이다 하하. 이런게 우정이다!(친구들:뭐래)


뭔가 신이라도 내려올 분위기

무슨 필터를 입힌건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굉장히 웅장하다.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런지 하늘이 더 넓어보였다. 하늘에 구름이 진짜 많은데도 깨끗하게 맑은 느낌이 드는 건 봐도봐도 신기하다.

내가 찍어도 꽤 잘 찍은듯     

여기도 플로럴 빌리지이다.  나름 잘 찍혀서 자랑하고 다니는 사진이다. 아마 붉은계열의 색 위주로 잘 잡아주는 필터였겠지. 저 뒤의 가게는 몇년전에 처음 갔을때도 굉장히 사랑스럽고 핑크빛 레이스가 달린 그런 느낌의 소품 팔았었는데, 그건 여전했다. 변한건 그때는 진짜 너무 예뻐서 돈만있음 다 사고싶었는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랄까. 내 돈 들고 갔는데도 말이다. 취향은 변하는구나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카라반 커피는 안 예쁜 구석이 없다.

이런 분위기의 카페를 한국에서는 별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정말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카페는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하거나 각자 작업을 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이라 그런지 깔끔하고 정리된 느낌이 있는데, 유럽이나 일본은 카페가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친구집에 놀러오거나 내 아지트 같은 느낌이랄까.





"후쿠오카는 달고, 오사카는 짜."

후쿠오카 출신 친구가 해준 말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오사카의 먹방 글도 적겠지만,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오사카 음식이 나같은 전형적인 한국인에게 좀 더 맞지 않나 싶다. 후쿠오카의 음식은 달고 느끼하지만 그만큼 유제품들이 정말 끝내주었다. 나의 여행은 항상 음식과 함께 출발하고 음식 가장 많이 남았는데, 이번 후쿠오카는 맑은 날의 유후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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