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접고 그냥 뛰어가라
유독 인생에 굴곡이 많거나, 좋게 말해서 환장할만한 일들이 많은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인생을 뒤흔들만한 시기들이 꽤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보기에 무난하게 사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나의 유난히 죄인 것 같았다. 세상이 모두 나를 지켜보고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 같으면 비웃듯이 다시 발로 차서 절망의 구렁텅이에 떨어트린 것만 같았다. 그렇다. 이런 걸 우리는 과몰입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과몰입은 내게 일어난 일들에 지나치게 의미부여를 해서 살아가는 무게를 쓸데없이 늘리게 해 준다. 남들이 보기에는 사색을 많이 하는 철학자(이런 유형의 mbti도 있을 것 같다) 같겠지. 하지만 본질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철학자라고 말하긴 좀 그렇다. 나의 경우에도 무슨 센터 부심이 있는 것처럼 세상이 모두 나를 주목하고 안 좋은 일만 주려고 주시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망했어, 이번에도 나야? 내가 뭘 그리 잘못했어? 난 이제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거야.
라면서 절망을 하는 내 모습에 또 절망을 하곤 했다.
이제 그러지 않냐면 아니다, 20년 넘게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게 하루아침에 될 리가 없다. 저렇게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절망을 하는 건 결국 남의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예를 들면 나의 경우 일자리를 구할 때는 직무나 산업군을 월급보다 더 신경 쓰는 편이다. 특히 전공을 살리지 않은 커리어가 되었기에 어디서라도 경험과 경력을 쌓기만 하면 된다. 전공 살린 친구들처럼 신입으로 큰 곳을 갈 순 없는 상황이다(능력도 안 된다). 그런데 주변에서 월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그 누구도 나를 '이 정도 월급으로 살려고 하다니 철없다'라고 말하지 않음에도 괜히 설명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월급으로 어떻게 살고 이 정도도 살만하고 아니고 난 대충 괜찮고 어쩌구저쩌구오라가차아니라느뇽. 그렇게 다 계획이 있는 척해서 누구한테 좋을까? 어차피 타인은 그 정도로 내 삶에 관심도 없는데.
어쨌든 재수 없는 일들은 00(여러분이 아는 최대한의 심한 말)같이 이루어졌고, 그럼에도 인생이 끝나지는 않는 바람에 수습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살아가야 한다. 물론 재수 없게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서 내 삶이 끝날 수도 있지만 그리고 대부분 그렇게 삶이 끝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목 위에 머리가 있다.
절망에 절망과 의미를 부여해서 뭐라도 과거의 후회와 미련의 불안에서 알아내려고 했다. 결국 현재 해야 할 일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다. 젠장 이제 좀 숨 좀 돌리겠거니 했는데 사실 숨 돌릴 틈 따윈 삶에서 없는 게 아닐까? 그 좋은 대기업을 간 친구들도 다들 고민거리가 있고, 공무원 시험을 붙은 친구들도 비상이 걸리면 새벽에 뛰쳐나갔다. 아직 좋을 때라고 생각한 대학을 다니는 후배들도 불안과 앞으로의 방향이 잡히지 않아 오히려 나를 부러워한다. 내 힘듦과 절망을 납득시켜봤자 비참한 나만 돌아올 뿐이다.
인생이란 폭풍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퍼붓는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작자미상
실제로는 이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은, 비가 오는 날에 굳이 우산을 쓰려고 덜 젖으려 하기보다는 퍼붓는 빗속이면 그냥 우산을 버리고 뛰는 게 낫다고 하셨다. 그냥 삶에 그렇게 뛰어들 수밖에. 정말 그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