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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하게 돌아다니며 모은 삶의 조언 조각들

조언 컬렉터. 정신은 그만 차리고 실행할 때.

by chul


내일부터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방황하다가 갑자기 카톡 대화가 생각이 났다. 내가 먼저 시작한 대화이며 이런 내용이 있다.


비싼 컨설팅을 몇 번이나 들었고, 면접 스터디도 했었고, 할 수 있는 걸 다 했는데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저는 이제 제가 정말 별로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누구도 저와 일하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아요.


10번 정도 면접에 떨어진 날, 미친 듯이 '면접만 보면 떨어져요'같은 검색을 하다가 발견한 한 블로거님께 다짜고짜 상담을 요청한 내용이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랬겠나 싶지만 동시에 도움을 기꺼이 청한 게 대단하기도 했다. 그 분과의 여러 대화로 취준뿐 아니라 회사, 삶을 대하는 내 태도가 굉장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감사하게도 내겐 삶의 방향성과 흐름을 다잡아주는 어른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자존심은 없고 자신감도 없는데 쓸데없이 자존감이 높아서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모아 온 조각들을 한번 공유하려고 한다.


첫 번째,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진부한 이야기지만 한 번만 더 들어달라. 더 정확하게 풀어보자면, 나는 삶은 그저 과정의 연속임을 믿게 되었다.

만약 면접이 탈락이 되더라도 결국 내겐 더 좋은 기회가 있다는 신호라고 생각했다. 바로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 그렇게 생각하며 나를 달래는 사람이 되었다. 무슨 일이 생겨서 고꾸라지더라도 결국 방향이 바뀔 뿐이고 의미부여는 내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다. 나에겐 채용 관련해서 억울하다면 억울하고 후회스럽다면 후회스럽고 반성이나 미련이 남는 일들이 몇 있었다. 단순히 서류나 면접 불합격부터 정규직 관련 이슈까지.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 일에 발목을 덜 담갔다. 그냥 빠질 시간에 재빠르게 늪을 뛰어나가는 작전을 펼쳤다.

두 번째, 비교는 어제의 나하고만 하게 되었다.

어제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왜 대기업이 그렇게 가고 싶었을까?

나는 왜 충분히 괜찮은 대학에 갔었음에도 sky를 가기 위해 반수를 택하고 결국 실패했을까?

간단했다. 나는 남에게 멋있게 보이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돈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하긴 하다 엄청) 워라벨이 없으면 죽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남들이 감탄할만한 결과를 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결과를 낸 주변 친구들이 부럽다 못해서 원망스러웠다. 나라고 그들처럼 노력을 안 한 게 아니니까.

지금도 부럽다. 엄청 부럽다. 다만 비교라는 행동까지는 가지 않으려고 한다. 어제 나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성장했는지를 상상한다. 어제 운동을 못 했는데 오늘은 5분이라도 하거나, 어제는 기분이 안 좋다고 할 일을 미뤘는데 오늘은 했다던가. 어제보다만 1도라도 성장하면 된다.



세 번째, 우리는 각자 별개의 흐름을 탈뿐이었다.

두 번째와 비슷한 이야기이긴 하다. 나는 유독 비교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내 주변 사람들의 흐름이 나와 같기를 바랐다. 누군가가 잘되면 나도 잘 되고 그런 위아래의 흐름이 비슷해야 덜 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복을 벗은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내가 모를 뿐 나와 주변인들은 전부 다른 흐름을 가졌다. 그렇기에 재밌지만 그렇기에 외롭고 열등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누군가는 가장 행복했기에 연락이 끊겨버리기도 했고, 아예 다르게 살다가 갑자기 상황이 비슷해져서 급격하게 가까워지기도 했다. 물론 그런 개인적인 흐름에 상관없이 한결같이 사람들을 대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만, 아직 그러기엔 한참 먼 것 같다. 내 삶을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도 왔다가 가겠지만 기본적으로 삶은 혼자 걷는 길이다.

마지막, 지금 이 순간 좋은 상태를 선택하려고 한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늘 되새김질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한 번에 하나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좋고 나쁘고를 동시에 할 수 없고 좋은 생각을 할 때는 좋은 생각만 그 순간에 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컴퓨터라는 게 참 인간이 만들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컴퓨터도 동시에 여러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여러 가지 일 을 번갈아 하면서 엄청 빠르게 사이클을 돌뿐이다. 앞으로도 나는 위의 모든 깨달음은 개나 줘버리며 다시 절망의 늪에서 헤엄칠 일을 겪을 것이다. 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이 몇 주 몇 달 몇 년이 될 수도 있다. 그럴 때마다 지금 이 순간에서 선택하려고 한다. 의미는 부여하기 나름이다. 일은 그냥 일어날 뿐이다. 내게 제일 좋은 상태-그게 기분이더라도 생각이나 몸 상태, 루틴 그 무엇이든-를 찾아서 그걸 선택한다.



뭔가 굉장히 많을 줄 알았는데 머쓱하게도 3가지로 축약이 가능했다. 결론적으로는 어깨 위를 가볍게 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다. 늘 나는 느리고 서투르다고 생각했고, 항상 안 좋은 일이 또 생길 거라 믿었다. 그거 말고 다른 믿음을 가질 수도 있었는데 그건 상상도 못 했다. 이젠 그저 지금을 살아가려고 한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절망할 일이 있다면 마음껏 절망하고 또 툴툴거리며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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