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과정에서 그냥 내 편이 되기로 했지만 아주아주 낯선 지금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한 발 짝 물러간 자세가 옳다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그건 결국 삶에서 일어날 일들이 무섭고 겁이 나서 미리 대비하는 비겁한 자세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과 여러 감정들을 (당혹감이나 실망감 혹은 이후 대처나 수습에 대한 피곤함) 감당하기 힘들었을 뿐이었다.
삶이 주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기꺼이 몸소 받아들이기로 했다.
삶에 속기로 했다. 기꺼이.
개인적으로 이런 자세는 나만의 탓은 아니라고 괜히 말하고 싶다. 이제 와서 누구 탓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말이다. 우리 집은 항상 최악을 상정했다. 그리고 그 최악을 피하면 안심의 한숨을 쉬었고 최악이 되면
이럴 줄 알았어. 난 기대하지 않았어.
라고 했다.
괜히 기대했다가 또 실망할까 봐 미리 벽을 치고 거리를 둘 뿐이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오는 기쁨이나 슬픔이 너무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감히 좋은 마음과 생각을 갖기로 했다. 잘 될 거라고 믿고 그를 위해 나아가기로 했다. 그리고 삶에 몸소 실망하고 기대하고 실망하고 기대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먼저 깬 딜레마는 부모님과의 대화였다. 우리 집은 항상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입사를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어머니는 예상치 못한 일로 입사가 취소될까 봐 나더러 기대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기대하는 말을 한번 해 보았다.
엄마 나 저번에 본 2개 면접 말이야
떨어졌지? 괜찮아.
아니 둘 다 붙었어 둘 다 최종 남았거든. 나 응원 좀 해줘.
어머니의 떨어졌지? 는 나를 엿 먹이려고 하는 말은 아니다. 기대했다가 상처받기가 싫고, 나에게 기대라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위로의 의도로 하는 말이다. 물론 실망을 많이 준 내 탓도 있지만.
나는 한 번도 내게 좋은 상황을 상상하고 바란 적이 없었다. 내 편이었던 적이 없었다. 늘 최악을 생각하며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정말 대부분 그 최악은 이루어졌다. 반수 실패로 복학을 했고 인턴에서 혼자 정규직이 못 되었으며, 살이 급격하게 쪘다. 모두 내가 두려워하며 늘 마음속에서 생각하던 상황이었다.
좋은 생각을 하면 그건 그거대로 또 이루어졌다. 내가 가는 곳마다 웨이팅이 없었고, 어딜 가더라도 늘 내 자리는 있었으며, 좋은 사람들과 연이 닿았다. 다만 내 운을 더 믿지 못했던 문제가 있었다. 이번에는 모든 면에서 내 운과 상황을 믿는 연습 중이다.
당연히 잘 안 된다. 그냥 잘 안 되는 정도가 아니라 더럽게 안된다. 내가 내 편인 생각과 믿음을 갖는 게 이렇게나 낯설 줄은 몰랐다. 나 또한 입사 확정 전까지는 계속 어디선가 틀어지는 상상을 했다.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게 20년 이상 내 습관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를 이렇게 만든 나 자신과 상황 주변 사람들을 진심으로 원망도 해 보았다. 입사 확정이 되자 수습기간이 걱정이 되었다.
다만 이 걱정도 불안도 예측이 아니라 생각에 불과하다. 생각을 조금 바꿔서 감정과 행동을 바꾼다. 그게 곧 결과를 바꿀 것이다.
에세이는 일기처럼 '--하겠다'는 각오로 끝나면 안 된다고들 하는데, 나는 그게 참 어렵다. 멋진 글이 늘 나오는 브런치에서 일기를 꿋꿋하게 쓰는 나를 보면 어이없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삶이 나에게 무슨 일을 던지더라도 그때그때 반응하기로 각오했지만 여전히 무섭다.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고, 이렇게 각오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힘들고 흔들리기도 하겠지. 다만 지금까지 견뎌온 시간이 내게 단단한 힘을 주었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