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할만한 일들은 전부 환상적으로 풀렸다.
나는 가끔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하는 생각을 한다.
어렸을 때는 보통 이게 안 좋은 의미인 한탄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그냥 순수하게 감탄하면서 사용한다. 나의 기나긴 취준(이라기엔 여러 일을 했었지만)에서 꽤 내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다. 부서 인턴 중 유일하게 정규직 전환을 실패한 사건이다.
남들은 더 좋은 회사로 가라고 했고, 실제로 그러기 위한 발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거의 1년 정도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우습게도 대기업인 그 회사 인턴경력 덕분에 서류란 서류는 거의 붙었다. 그러나 면접만 보면 다 떨어졌다. 최종을 간 적이 없었다, 1차에서 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게 떨어짐은 일상이었고 누군가가 떨어지면 그건 나일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더 나아가서 만약 우글우글 모여있는 사람들 중 사고가 나서 꼭 한 명이 죽는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나일 거라도 믿었다. 그렇기에 큰 기회가 왔을 때, 나의 것이 아니라며 지레 겁을 먹고 놓치곤 하였다. 운이 좋게 일을 하게 되어도 늘 최악을 상상했고 그 최악은 곧 현실이 되었다.
그걸 지금도 반성하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이후에 걸어간 일들이 지금의 나의 상황과 상태를 만들어내었고 나는 지금의 나와 주변이 썩 맘에 들기 때문이다. 물론 살이 엄청 찐 것과 지출 습관이 엉망이 된 건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다.
어쨌건 여러모로 지치고 질려버린 나는 이제 일어난 일에 의미부여는 그만하기로 했다. 어차피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전제라면 무슨 일이 또 일어나도록 해서 전세역전을 해야 했다. 뒤돌아보거나 주저앉아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스스로를 연민할 시간이 없었다.
엔지니어 인턴 했었다고요? 완전 다른 일 했었네요.
학부생 때 여러 팀 프로젝트와 엔지니어 인턴 일까지 겪으며 프로젝트와 관련된 일이 맞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다 보니 프로젝트 매니저가 커리어의 최종 목표가 되었는데 당연하게도 신입은 거의 채용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알아보니, PM은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로 시작한 사람들이 걸어가곤 했다. 공대 출신이기에 당연히 개발자로 시작하실 줄 알아셨겠지만 나는 기획 직무로 신입 생활을 시작했다. 여기서 한번 더 방향이 바뀌어서 기획 직무로 뽑혔지만 여러 미팅과 면접을 통해 나는 처음과는 다른 부서로 배치되었다. PM으로. 기뻤다기보다는 슬라임이 나와야 하는데 최종 보스가 갑자기 튀어나온 기분이었다.
이제 입사 초기에다가 수습기간인 나는 당연히 PM으로 바로 투입되진 못한다. 관련 교육과 발표 등등이 줄줄이 잡히고 있고 과제를 받았다. 당연히 마음 한구석에 있던 불안은 갑자기 유속과 유량이 급속도로 높아져서 나를 휩쓸어버리곤 한다. 그 모든 불안과 생각에 대결해보았자 난 진다. 그냥 의식하지 않고 떠다니다 보면 어느새 줄어들고 바닥이 드러난다.
어쩌면 일어날 일은 그냥 내가 걸어갈 길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체하더라도 뒷걸음질을 치더라도 시기만 다를 뿐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났다. 가끔은 이 일이 일어나려고 그 모든 것들을 겪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엔지니어 인턴에서 정규직이 되었다면 나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금 만난 사람들을 못 만났을 것이고 착실하게 공학 전공생의 탄탄한 루트를 밟았을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사람 일은 정말 생각대로 흘러갔다. 그 모든 여정과 일어나는 일은 나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 일어난다는 사실도 실감하고 있다.
그러니 바뀐 삶의 방향에 방황해도 좋고 주저앉아도 좋다. 좋지만, 좋은 일을 얼른 겪고 싶으면 나쁜 일들을 몸소 마구 받아들이면서 지체 없이 나아가야 한다. 어쩌면 나쁜 일이니 좋은 일이니 다 그냥 의미부여를 하기 따름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