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트린 스케쥴표가 우연히 작년 12월 페이지로 펼쳐졌다. 요즘 정신없이 일만 하느라 스케쥴표도 제대로 살피지 않고, 100일동안만 스스로를 가장 좋은 상태로 만들겠다는 결심도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모든걸 그만두고 싶었고, 많은게 밀려왔고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아무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무슨 마음이었지.
100일만 스스로를 믿고 좋은 상태를 만들자고 각오하고 하나씩 투두를 지워나가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던가.
정신없이 지내면 좋은 거라고 착각했다. 아주 착각이다.
진짜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밤새서 야근을 하고 일을 하는 상황이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근거는 아니었다. 어느순간 무언가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직감이 왔다. 아니나다를까 나는 처음에 기대했던 것보다는 훨씬 못하고 있어서 의아하다는 피드백을 들었다. 물론 신입인 내가 계속 푸쉬를 당해서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들을 여러개 낸 상황적 탓도 있다. 그러나 이 사단까지 온 건 스스로를 잘 통제하지 못하고 마무리를 아쉽게 만든 나였다.
피드백(이라고 쓰고 지적이라 읽는다)을 받는 일주일 내내, 정말 왜 놓쳤는지 모를 포인트들을 놓치고 있었다.
나를 우습게 보는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내가 이 툴 쓰지 말랬죠.
인턴때 제출한 나의 실습을 보고 차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어쩌면 나는 저 정도의 말은 놓쳐도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혹은 상사들이 그 정도는 넘어가주겠지, 신입이니까, 나는 칭찬을 꽤 듣고 있으니까, 혼자 들어온 신입이니까, 봐주겠지.
이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결국 그게 허접한 마무리의 일들에서 드러났다.
수습 1개월 미팅까지 하고 나자, 이 사단까지 온건 남을 너무 의식한 내 자세의 문제였음을 깨달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라는 수준만 해놓고서는 쓸데없이 일찍오고 늦게가고 주말에도 일을 했다. 남들은 내 결과를 보고 의아해했다. 정말 말과 겉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는 사람이 되어서 부끄럽고 속상했다. 욕심이 많다는 이야기를 선배나 상사에게 여기저기서 들어놓고는 아닌 척 하고 있었다. 젠장, 나는 욕심이 많은데다가 그걸 잘 다루지 못하기까지 했다.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가끔은 면접에 탈락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었지만 너무 자주 잊곤 했다.
무엇이든 징징거리고 힘 좀 얻어보려고 전화를 집에 걸어도 그곳에서 일어난 사단에 입을 다물고 속상해하기만 한다. 나는 이 사단에 무엇하나 제대로 못해내는 걸까. 이런 상황에 살아와서 회사에서도 내 농담에 다들 당황하는걸까. 기준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이 아니게 되어버린걸까.
그렇게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나또한 더 이상 에너지가 없을때쯤 다시 그 스케줄표를 펼치곤 한다.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던 10개의 면접에서 다 떨어지던 때의 메세지들, 그 때의 일기를. 그때의 내가 무슨 마음으로 100일동안 왜 미치고 싶었는지. 누군가가 나를 받아들여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게 아니라, 내가 믿는대로 살아가진다는 사실을 늘 되새긴다. 살아있기에 살아가야하고 때로는 살아남아야한다는 사실이 유독 기가 허하고 호구같다는 말을 듣는 내게 벅차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늘 가장 원하는 바를 상상하고 가장 좋은 것을 원하고 있다. 계속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