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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오늘도 택배에 하리보를 넣었다.

세상으로부터 무조건 받는 달콤함

by chul

오늘도 엄마에게서 온 택배 안에는 하리보가 있었다.

고시원, 하숙에서 살 때도 항상 하리보가 첨가된 택배를 받았기에 거의 7년은 된 문화이다. 문화라는 거창한 단어를 사용하기에는 너무 사소한가. 고작 나와 엄마 둘이서만 공유하는 습관 같은 거니까. 보통 옷을 보내거나(엄마는 옷가게를 운영한다.), 간단한 조리식품, 가끔 반찬들을 보내준다. 그러거나 말거나 하리보는 항상 한 봉지씩 들어있다.


엄마는 요즘 속상한 일이 많다. 내가 회사에서 잘 못하고 있고, 안 좋은 피드백과 말들을 듣고 힘들어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꽤 강한 단어로 충격을 받는 지금, 나는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엄마에게 자주 전화를 걸었다. 어느 날, 필요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이야기했을 때 엄마는 한동안 답이 없었다. 그 말을 전한 나 또한 후회했다. 말했다고 후련해질 리도 없는데 굳이 말한 내 입을 때렸다. 엄마는 내가 전 직장 이슈로 이번 직장을 구했을 때 그들이 참 고마운 사람이라고 할 만큼 나에게 몰입을 하기에 충격을 받은듯하였다. 그런 엄마가 이번에 하리보를 무슨 마음으로 넣어서 보냈을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아무래도 나는 소중한 모양이다. 엄마에게 내가 소중하듯 나 또한 엄마가 소중하다. 엄마가 속상해하니 힘들다 못해 분노가 일었다. 그래, 내가 좀 못했고 신입이고 막내이기에 막말 들어도 뭐라 못 할 입장이긴 해도. 이렇게 소중한 나를, 그렇게 대하다니. 내가 그냥 기 죽고 지낼 것 같아. 이 악물고 제대로 해내서 여기서 뭐라도 잡고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테니까.


택배를 준비하며, 근처 편의점에서 하리보를 샀겠지. 아마 엄마는 하리보라는 이름을 모르기에 직원분께 곰젤리 어디 있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그렇기에 가끔 하리보는 초면인 곰젤리로 교체되어 오곤 했으니까. 남들이 내 편이 아니고 혹 적이라고 해도, 엄마가 100% 나의 편만은 아닐지라도 나는 곰젤리를 볼 때마다 내 편이 다시금 되곤 한다. 감히, 기꺼이 나는 하리보를 받는다.


내일 출근하면 세상은 내게 쫀득하고 달콤한 하리보만 주진 않겠지. 하지만 하리보를 받은 순간의 기억으로 나는 몇 개는 사양하고 몇 개는 줍는다. 그중 무언가는 누군가가 내게 던진 것만으로 치명타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주워서 품에 안고 갈 것들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무엇을 어떻게 보낼지, 던질지를 심사숙고해서 선택한다. 좋아하거나 필요한 것들만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타인에게 보낼 것을 고르는 나날이 계속된다. 그럼에도 내겐 잊을만할 때쯤 들어오는 하리보가 있다. 하리보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콧노래를 부르며 줍고, 다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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