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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이 아니라 나로 구원받아야했다.

by chul

나에게 유구한 역사가 있다면, '남'을 통해 무언가를 채우려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나보다는 남을 더 의식하겠지만, 그건 또 어떤 의미로는 나를 너무 의식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니까. 사실 남도 나처럼 자신이 남들에게 어떻게 보였을지가 더 중요할텐데 말이다.


나를 남들에게 설득하는건 그만두기로 했다. 특히 회사를 다니다보니 내가 믿고 함께 잘 하고 싶은 이들에게 '잘 하는 사람' 으로 보이고 싶었다. 한때 굉장히 많이 혼났고 못한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 말을 한 사람들에게 인정받야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사자들이 나를 인정해야, 잘 한다고 해줘야 그때의 힘들고 비참했던 내가 성불(?)한다고 믿었다.

음.

역시 아니다. 나는 나로 인하여 구원받고싶다. 나를 구원하고 싶다. 남들에게 굳이 계산하지 않고 진심으로 다가가면서 기꺼이 미움받고 사랑받고 선을 넘지 않지만 솔직하게 다니며 행복하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하고 있다.


첫번째, '아유 제가 아직 못하죠?(하지만 난 잘해왔다구 앞으로 잘할거라구)'

워낙 능력있는 사람들이 많은 부서에 신입으로 들어왔다보니 열등감이 많아졌다. 당연히 비교도 되고, 좋지 않은 소리도 종종 듣는다. 그때마다 일일히 기가 죽진 않는다. 아니, 솔직히 기가 죽긴 하지만, 한번 명량하게 이야기한다. 스스로에게

'제가 아직 못하죠?'

그리고 덧붙인다.

'그래도 나는 성장해왔고 나라서 이정도까지 왔는걸요. 앞으로 더 잘하게 될건데요 뭘.'

이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지지 않아도 된다. 내 미래와 과거와 현재는 모두 내가 감당할 몫이니까. 나는 내가 걸어온 길을 믿는다.


두번째, '우와, 진짜 감사합니다.'

직무 특성상 요구할 일이 많다. 경력직이자 이 회사에 입사한지 오래 된 사수님에 비하면 내 요청은 누군가에겐 그저 귀찮은 일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자신의 시간을 들여서 내게 알려준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생각한다. '고맙다'고. 그리고 시간이 되면 간단하게라도 전한다. '해주셔서,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가 00할 수 있어요.' 쉽게 감동받는 나는 어쩌면 호구일지도 모르지만. 호구가 될까봐 벌벌 떨 바에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묘하게 이상하지만 자기는 행복한 호구로 살련다.


세번째, '나는 다 틀린다.'

겸손이 아니다. 이건 내가 '남을 유추할때'하는 생각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서로를 의식하고 유추하지만 틀린다. 나또한 누군가가 나를 잘 알듯이 이것저것 이야할때, 상담선생님이나 의사선생님이 아닌한 대부분 틀리는 모습을 보았다. 이건 나도 마찬가지리라.

오늘따라 유관부서 사람이 이모티콘도 없이 대답했다, 내가 말도안되는걸 요청했을까? 난 이렇게 친절하게 말했는데 너무하네. 나도 쌀쌀맞게 말해?

라는 생각이 들면 외친다.

나는 다 틀린다.

그는 그만의 전쟁을 하고 있겠지만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다. 나는 나대로 똑같이 친절한 모드로 간다. 내 행동에 영향을 안 미치게 할 것이다.


어쩌면, 그냥 나 편한대로 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생각이 짧고 금방 상처받고 금방 치유되며 사람을 잘 싫어하지 않는 만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미움은 받는 사람보다 하는 사람이 괴롭다는 것을 안다. 나또한 누군가를 죽일듯이 미워했기에. 지옥을 맛봤기에. 용서하라는게 아니다. 내게 그들이 힘을 발휘할 수 없게 하찮고 귀엽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나 편한대로만 원하는 근거만 쏙쏙 뽑아서 즐겁게 살아도 된다. 내가 그렇게 살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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