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때가 안 좋았던 사람
3월이다.
이제 3월이고, 학생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친구의 톡을 받았다.
고등학생은 너무 빡쎘고(우리 둘 다 같은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 편이었다.), 대학생이 너무 재밌었다며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조금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는 뻥이고 그냥 바로 대답할 수 있었다. 나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10대와 20대 초중반의 나는 죽지 않은게 신기한 삶을 살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때의 여파로 있는 건강하지 않은 후유증을 수습하느라 겨우겨우 살아가는데 그 태풍의 한가운데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의 나의 삶은 늦게 취직했고 모은 돈도 없고 지출 습관도 겨우겨우 다듬고 있기에 엉망이겠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 있어서는 가장 좋은 상태와 상황이다. 내일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내일 해야 할 일을 덤덤히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좋은 상태다. 앞으로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거라고, 그걸 얻을 거라고 스스로를 믿는다는 점에서 좋은 상황이다.
그래서, 10대와 20대의 내가 어떻게 이런 20대 후반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결론적으로는 상황이 풀리면서 상태가 좋아진거지만. 그 상황이 좋아지기 위해서 나의 상태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 발버둥을 쳤었다.
그래서, 당신은 좋은 상태를 어떻게 유지했냐고?
도망갈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았다.
보통 이랬다.
도망갈 시간 : 오전 7시부터 9시
도망갈 장소 : 아무도 없는 거실 혹은 사람 거의 없는 경의선 숲길
혹은
도망갈 시간 : 해질녘
도망갈 장소 : 도서관
거기서 나는 최대한, 내 현재 상황에서 하면 안 될 짓들을 했다. 멍때리거나, 책을 읽거나, 즐거워하거나, 도피했다. 거기서 나는 충분히 내 에너지를 채웠고 다시 고요하고 모두가 한심하다고 생각하는 나만의 전쟁터로 돌아왔다.
숨을 쉴때마다 나는 이럴 때가 아니라고 울부짖어봤자 상태도 상황도 나빠질 뿐이었다. 상황이 거지같고, 풀릴 때가 정해져있다면 나는 기꺼이 잘 지내기로 했다. 남들은 나를 비웃었고 나는 그냥 웃었다.
그랬더니 요즘 나는 내 인생에서 꽤 잘 지내는 하루하루를 갱신하고 있다. 최근 일은 아니고, 이런 느낌은 몇달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요즘도 도망친다. 도망치는 장소도 시간도 그때 하는 행동도 철없던 시절과는 조금 달라졌지만 말이다.
이제 나는 회사 옥상에서 커피를 마시며 도망치고, 회사 동료와 점심시간에 회사 사람이 적은 카페로 도망치고, 아침에는 헬스장에서 오늘 일어날 모든 일들을 다 잊기위해 도망친다. 출근길에는 팟캐스트를 듣거나 책을 읽는다. 일어날 일은 그때 일어나면 생각한다. 나는 도망치는데는 도가 텄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또 누군가는 비웃고 있지만 나는 웃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갈거라고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