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할수록 평소와 다름없이 하루를 지켜내보세요.
알람을 5분씩 늦추며 10번을 그짓거리를 했을때. 그래서 이 시간으로는 아침 운동은 못 간다는 판단을 내리면서도 졸음이 쏟아지는 내 눈꺼풀을 보면서, 인정했다.
젠장, 나 우울증 다시 심해졌구나.
우울 뒤에 증을 붙이느냐 아니냐에따라 한국에서는 그걸 ‘에구, 요즘 힘들구나’ 에서 ‘아니, 어떤 말을 해줘야할지.’로 구분짓는 듯 하다.
나의 오래된 친구인 우울, 그로인한 우울증은 여러 형태로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갑자기 뚝 없어지곤 했다.
그러니까 내게 이 상태는 오히려 익숙한 상태인것이다. 다만, 이런 상태여도 괜찮았던 소속 없던 학생&취준생&백수 시절과는 다르게 나는 내 눈 앞의 일과 사람들을 대응하고 수습해야하는 사회인이라는 차이가 있다.
나는 이럴때, 늘 하던 루틴을 최대한 지킨다. 기분 환기를 위해 추가를 하면 했지, 늘 하던 것을 덜어내진 않는다. 쉬니 마니의 문제가 아니기때문이며, 해야 하는 것을 못 하면 스스로에게 오는 자책이 와서 결국 더 큰 우울과 불안에 허덕익 된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어찌어찌, 운동은 못 가도 늦지 않게 일어나서 홈트레이닝과 글을 쓰고 있으므로 덜 죄책감을 느낄 시작이다.
우울증이 심해지고, 어쩌면 번아웃(이 단어는 내가 직장인이기 때문에 사용하기가 허락된 듯 하다)까지 오고 있음을 안다. 어떻게 아냐면, 아래와 같은 나만의 기준이 있다.
1. 잠이 온다. 잠을 자도 계속 온다.
처음에는 피곤해서 잠이 온 줄 알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눈을 뜨면 감당해야하는 현실이 싫어서 눈을 감았다. 잠을 충분히 잤고 잠이 오지 않음에도, 몸이 아픈게 아님에도 계속 자려고 한다. 그러면 내 머릿속에는 적신호가 울려퍼진다. 오, 이거 설마?
2. 주변인들이 다 못마땅하다.
한두명도 아니고, 모두가 못마땅하다. 그들이 지금 하는 행동, 과거에 내게 저질렀던 행동 모두, 그 의도를 추측하고 혼자 열불을 낸다. 나는 요즘 내가 속한 그룹의 문화와 구성원들에게 불만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 중 평소라면 그냥 넘겼을 일들, 아마 잠깐 기분나쁘고 말 일을 억지로 곱씹는 내가 있었다. 그러면 그들을 상대해야하는 하루하루가 버거워지고 눈살이 찌뿌려지고 1이 반복된다. 잠이 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수많이 겪으면서 나름 얻게된 팁이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대로 하루를 최대한 충실히 사는 것이다. 그냥 우울과 불안과 마뜩찮음 모두 옷처럼 내버려두고 할 일을 한다. 그 자리에 그 감정들을 오롯이 두고, 잠깐잠깐 뭐하는지 지켜본다.
두번째는 다른 생각을 집어넣는다. 지금 이 문제들에 대해서 나는 건설적인 생각을 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냥, 남들은 바보같다고 하는 즐거운 컨텐츠들을 넣는다. 나는 에리히 프롬과 파울로 코엘료 책을 처방전으로 내려주었다. 오랜만에 아이돌, 만화 덕질도 다시 시작했다. 가고 싶은 전시도 있고 집 주면에 매화가 곧 핀다는 사실도 알아내었다. 일찍 퇴근한 날에, 맥주 한 잔과 과자들을 들고 매화를 보러 해가 지기 전에 달려갈 것이다.
정말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전화도 징징거리는 카톡도 보내보았다. 다음주중에는 친구의 차를 얻어타서 잠깐 강을 보러간다.
중요한 사실은, 이 모든 일들은 첫번째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을 위한 일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렸던 나는 두번째 ‘환기 및 기분 좋아지기’에 너무 충실해서 눈 앞의 현실을 망쳤다. 수업 중간에 죽을 것 같아서 서촌에 벚꽃을 보러 뛰어갔고, 전시를 보러 중요한 시험을 출석하지 않았으며, 그냥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한 학기 등록금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나는 수습 및 대응에서 도망을 쳐왔다.
이제 그 모든 것들이 쌓여서 내게 복수함을 알고 있다.
무엇보다, 나는 현실도 잘 살고 싶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아도 꽤 잘 대해주고 나름 티키타카하고싶고, 일을 거절하더라도 내 일만은 확실하게 해내고 싶고, 뿌듯하게 운동을 하여 하루를 시작하고 맺고 싶다.
그래서 오늘 운동을 못 갔음에도 홈트레이닝을 놓치지 않는다.
일을 할 머릿속이 아니어도, 오늘 할 일을 미리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세운다.
필요하면 거절도 할 것이다.
우울하고 불안하니까, 오히려 평소와 다름없이 지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