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이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만 같을 때
줏대 있게 먹어보고 네가 결정해.
트위터 인스타 아이돌 덕질 도합 몇 년인 내가 언제 봐도 웃긴 장면이다. 무대화장이 이뤄져서 더욱 줏대 있게 살아.라고 말해주는 듯하다(실제로도 그렇게 말함) 저게 뭐 빵인가 음식 맛을 물어본 동료에게 한 말이라는 것은 3번 정도 돌려보고 나서 알았다. 그만큼 저 줏대에 졸았다는 거지.
웃고 만 장면이었는데(그렇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웃은 듯.) 요즘 들어 이 장면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작은 거 하나하나 다른 사람들에게 결정을 맡기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임. 피드백을 잘 수용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지만 결국 나는 '남'에게 인정받고 이해받아야만 내 삶을 살았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든 것도 어머니나 친구가 인정해줘야 했고, 괴로울수록 남들에게 그 괴로움을 이해받고자 했으며, 큰 결정 또한 스스로 이미 내렸음에도 다른 사람이 정 반대의 의견을 내면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이런 나였기에, 가스라이팅 당하기도 쉬웠다. 눈치챈 사람들은 내 말투부터 외모 숨 쉬는 방식까지 지들이 원하는 대로 하도록 조종하고 비난했고, 나는 내 의견조차 내지 못하고 구역질만 했다.
갑자기 안 그러기로 했다면 좋겠는데 솔직히 빠져나오기가 쉽진 않다. 알다시피 개소리와 정확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적을 구분하는 건 어렵다. 나는 피드백을 잘 수용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말을 잘 듣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좋은 피드백이라 해도 받아들이려면 나의 안 좋은 면을 마주하고 인정해야 했다. 어쨌건 괴로워 디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죽진 않아서 살고 있다.
디지지 않았다? 진짜다.
웃기게도 그렇게 죽을 것 같았는데 죽지 않았다. 눈앞의 그 사람들은 이 세계의 마왕이라도 된 듯이 압도적으로 두려운 존재였다. 실제로는 그냥 눈앞의 사람보다는 옆에서 달려오는 자동차로 죽을 확률이 큰데 말이다.
하여튼, 거기서 건강하게 내 삶을 살기 위해서 뭐라도 해야 했다. 엿같지만 상처를 준 사람이 상처를 치료해주진 않는다. 자동차에 치여서 전치 4주가 되었다고 그 자동차가 나를 치료해 주나? 그 자동차를 폐차시키고 독일 이그노벨상을 받은 어떤 정치인처럼 탱크로 깔아뭉개도(불법주차한 차들을 탱크로 깔아뭉개서 이그노벨상을 받은 상남자가 있었다.) 내 전치 4 주자 전치 1일이 되진 않는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면서 내가 한 것이 뭐냐면, 안경을 가운뎃손가락으로 몰래 올리는 거였다.
나의 아주 작은 반항이자, '흥 개소리하지 마'를 하게 된 계기이다. 모든 지적과 굴욕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도 안 볼때 가운뎃손가락으로 안경을 올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다음에 무기력에 한 반항은 옷을 의자 위로 올리는 거였다.
그래 나는 겨우 살아갔기 때문에 모든 옷이 바닥에 있었다. 그것들을 넘어가며 살아왔다. 내 줏대로 옷을 위로 올렸다! 그리고 심지어 가지런히 정리까지 했다, 개쩐다. 4개월 동안 가스불도 켜지 않던 내가 장을 보고 작은 요리를 하나 해 보았다. 그냥 파스타 면을 삶아서 소스를 넣는 것뿐이었지만, 맛있다. 2주일은 설거지를 쌓아놓았는데 이번엔 바로 청소까지 했다. 삶을 내가 선택해서 챙기자, 무기력하기만 했던 나에게도 통제권이 생기는 듯했다.
하다못해 옷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것조차 내 능력 밖이라고 착각될 때가 있다. 학습된 무기력일 수도 있다. 오늘 병원 가서 들은 이야기인데, 쥐를 통 안에 넣고 쥐의 코 아래까지 물을 채운다. 그러면 처음에는 코를 물 밖으로 빼서 숨을 쉬려고 하지만 나중에는 그냥 물 안으로 힘이 빠져 가라앉는다. 나에게 모든 것이 물이었다. 나는 그냥 코를 박고 내려가있었다. 구원은 누가 그 통을 열어 물을 빼 주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웃기지 마라. 그건 착각이다. 그래서 옷을 개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계부를 쓴다. 바로 모든 게 회복되지 않아도 하나씩 쌓아가면 된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이 난리가 나도 줏대 있게 먹어보고 스스로 판단하자. 고마워요 줏대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