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보드에서 떨어지는 방법을 배웁니다. 신기하죠?

by chul

서핑을 하러 왔다. 태풍오기 직전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들뜬 마음으로 게스트하우스와 서핑강습을 등록했다. 나름 헬스를 했으니 운동신경이 그래도 최악은 아니지 않을까, 하며 겁도 없이 멋지게 파도를 타고 있는 나를 상상했다. 결국 바닷물만 겨우 마셨지만.


서핑 전, 매니저님이 '제일 먼저'들어야 할 지침이 있다고 하셨다. 과연 무엇일까, 파도를 잘 타는 법? 서핑보드에 멋있게 올라가는 법?

그 모든 예상을 깨고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서퍼보드에서 떨어지는 방법과 떨어졌을 때의 행동 지침이었다.

서퍼보드가 모래사장에 가까워졌을 때 떨어지는 방법이나 바다 한가운데서 서퍼보드에서 떨어졌을 때 대처법, 내가 가고 있는데 내 양옆으로 서퍼들이 오고 있을 때 대처법. 처음에는 기운이 빠졌다. 아니 멋지고 폼나는 기술을 알려달란 말이야. 하지만 이에 대한 중요성은 바다에 들어가자마자 실감했다.


첫 번째로, 정말 보드에서 떨어지기 십상이라는 것. 그냥 들어가는 순간부터 4번 이상은 떨어진다고 보면 된다.


두 번째는, '떨어질 때의 대비'를 알고 있기 때문에 떨어지는 게 무섭지 않다는 것. 떨어지더라도 당황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된다. 떨어진 후에 어떻게 올라와야 하는지, 어디에서 떨어져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로 다시 들어가는 게 무섭지가 않아 진다. 어차피 떨어지고, 잘 떨어져서 다시 올라올 것을 아니까.


사실 나는 수습에 약하다. 나뿐 아니라 대부분은 한국 사람들은 '잘하는 법'만 알지 '못 하거나 실패했을 경우 다시 어떻게 올라오는지'는 논외로 쳤을 것이다. 생각보다 잘하거나 잘 되지 않는 나를 보고, 잘 나가는 옆의 사람들을 보며 절망에 빠진다. 어떻게 일어나야 할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잘하라고만 했지, 잘 못했을 경우 다시 잘하기 위해 '잘 떨어지는 방법'을 모르니까.


나도 그랬다. 지금도 그렇긴 하다. 하나만 생각하고 그게 안 되었을 경우 수습이나 대처가 아니라 그냥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더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는 것을 그냥 지켜본다. 누군가가 혹은 상황이 나아져서, 이 위기를 극복시켜 주길 바랐다.

더 심각할 때는 그냥 정신 놓고 포기해서 더 안 좋은 선택을 해버린다. 당연히 잘될 것만 생각하지, 잘 안되면 안 된다는 간절함만 있지, 그 외의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바다 가운데서 보드에서 떨어졌을 경우엔 아예 잠수를 해서 '3'초 뒤에 일어나야 한다. 내 머리 위로 보드가 파도를 타고 지나가고 있기 때문에 바로 일어나면 부딪힌다. 아예 보드를 보내고 나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이렇듯 회복의 시간을 지내고 나서 일어나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인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아야 한다.




아 그리고 사실 떨어지는 게 큰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 가려고 뒤를 돌면 파도가 미친 듯이 온다. (태풍 직전이라 파도가 겁나 셌다고, 다음에 평소의 파도를 보고 서핑을 하면 재미없을 거라고 코치님이 농담했다.) 처음에는 보드를 꽉 잡고 내 발에도 힘을 줘서 '버텼다.' 하지만 넘치는 순간 내 키보다 커진 파도를 버틴다는 것은, 그냥 그 안으로 잠기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코치님은 그게 아니라고 했다. 보드를 꽉 잡고, 파도가 오면 몸을 던져 파도를 타야 한다. 엥, 튜브도 아닌데 이걸로 내가 파도를 넘실 탄다고? 에라 모르겠다, 하고 큰 파도를 보고 뛰었다. 그런데 진짜, 파도를 '탔다.' 타서 넘었다. 심지어 힘도 별로 안 들었다.


어차피 뛰어들 거면 힘 빼고 과감하게, 넘실 넘듯이.

삶의 태도에 대해서 의외의 곳에서 배우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