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좋다. 산책로로 유명한 연남 거리를 걸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긴 벤치에 사람들이 많은데 한 할아버지가 앉아서 마이크를 들고 있었다. 옆에는 스피커도 있다. 보통 그 거리의 나이대가 있으신 분은 잘 차려입고 사회적이나 종교적인 메시지를 토해내듯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분은 모자를 눌러쓰고 너무나도 평범한, 동네 산책하는 복장이었다.
이질적인 모습에 눈길이 갔다. 그분이 머뭇거리는 소리가 미처 내려놓지 못한 마이크를 통해 들렸다. 뭘 하시려고 저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지? 그리고 그분은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긴장 탓인지 노랫소리는 작았고 중간에 끊겼지만 유명한 노래였다. 이런 멋진 광경을 묘사하는데 내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그 노래 제목을 못 찾겠다. 대충 흐르는 강물의 연어처럼? 그와 비슷한 노래였다.
잠깐 발걸음을 멈췄다. 나는 사실 크게 감동을 먹는 편도 아니고 버스킹처럼 서서 듣는 것도 못하기에 갈 길을 갔다. 가면서 생각했다. 저분처럼 늙어야지.
나이가 80이 되어가도 나이대에 비교적 덜 어울리는 버스킹에 도전하는 것도 멋졌다. 하지만 그분의 머뭇거리다가 한 소절을 내뱉는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나도 나이가 들어도, 머뭇거리다가, 무서워도 한 걸음을 떼는, 모두 앞에서 노래를 더듬거리며 부르는 할머니가 되어야지. 그렇게 늙어야지.
하루하루가 힘든 나날이다. 서른을 앞두고 있기에 나의 모든 일정과 인생이 늦어진 것만 같다. 직장 내 괴롭힘은 흔했고, 나는 그저 못 버티고 나온 젊은이가 되어 있었고, 00년생들이 직장을 가지는 와중에 나는 서류 탈락이나 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게 거추장스럽다. 괜히 살아나서 밥을 먹이고 나를 챙기고 사람도 보고 일자리도 알아봐야 한다.
그런데, 나 좋은 직장 가보고 싶다. 물론 따질 때가 아니니까 최대한 지원하고 붙는 곳 바로 가겠지만. 직장에서 일을 하고 싶다. 퇴사했지만 일을 하는 동안 행복했다. 몰입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행복이라는 게 기분이 좋고 몽글몽글하고.. 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이 세상에 나와 그 일밖에 없고 시간의 흐름이 안 느껴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위축된 모든 마음을 안고도 영어 공부를 하고, 취업 사진을 찍으러 가고, 공고를 찾고, 운동을 하는 것이다. 세상을 다시 살아내는 게 머뭇거려지면서도 말이다.
그 할아버지가 첫 소절을 내뱉을 때 있어서 다행이다. 아마 그 할아버지는 그 노래는 완곡했을 것이다. 원래 도전이나 행동이라는 게 그렇다. 한번 시작하는 게 무섭지 시작하면 일단 뭐라도 하게 된다. 그 순간에는 할아버지와 그 노래밖에 없었을 거야. 나도 내 눈앞의 일들과 해야 할 공부들에 머뭇거리면서도 결국 도전하고 몰입해야지. 나이가 먹어서도 머뭇거리며 다시 세상에 결국 도전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