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회복은 허락되는가?

상처를 회복하면서 현실 수습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모든 이들에게

by chul

요즘 들어 그런 느낌이 든다. 이거 진짜 답이 없는 거 아니냐?


물론 잘 못 지내서 그러는 것은 맞다. 잘 지내는 사람이 이런 글을 모두가 좋은 스펙 가지고 있는 브런치에 굳이 쓸 필요가 없지 않나요. 특히 답이 없다는 느끼는 이유가 있다.

나에게 회복할 시간이 전혀 허락되지 않았고,

회복할 시간이라고 치열하게 우울증과 싸워서 살아온 시간은 공백기로 치부당했기 때문이다.

지나가버린 시간들

그런데 누군가는 회복에만 신경을 써도 되는 환경이었다.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지만 힘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취업준비생으로 예시를 들어보자. 취준생인데 남들이 금방 가는 대기업을 못 가는 나를 보며 생기는 열등감, 앞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 심적 체력적 힘듦과 지침, 내가 해온 것에 대한 허무감.. 정도 ‘만’ 느낀다면 나는 그를 행운아라고 하겠다.

하지만 어떤 취준생은 위에 열거된 모든 심리적 압박 위에 생존에 대한 압박을 느끼고 있을 수 있다. 당장 밥을 먹어야 하거나, 나 말고는 돈 벌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내가 돈을 못 벌고 있다거나, 남들은 비싼 면접용 메이크업을 하지만 나는 올리브영에서 세일하는 아이라이너가 최선인 사람들이 있다.

무엇이든

전자는 심리적 압박을 회복할 수 있지만 후자는 회복이 사치다. 후자는 아마 이런 말을 들었을 것이다.


“네가 절망할 시간이 어딨어?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지.”


후자는 모든 일들을 다 감당하느라 전자보다 상황이 느리게 나아진다. 결국 가진 자만이 더 잘 되는 시스템이 아닌지, 그런 흔한 말을 요즘 실감하고 있다.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나는 둘 다 겪었다. 전자였다가 지금은 후자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는 평화로웠으나 경각심이나 계획적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갑작스럽게 모든 경제적 부담은 각자 스스로 져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취업 준비는 쉽지 않았고 여러 곳은 합격해서 다녔지만 결국 타의로 혹은 타의에 의해 자의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조직에서 내가 만난 ‘어른’이란 사람들은 내 기대와 달리 추잡하고 비겁했다. 회사를 다닌 게 아니라 사고 능력은 덜 성숙되고 인성은 잘 못 가지고 태어난 나잇값 못하는 양아치들이 통치하는 꼴을 보다 왔다. 이 모든 윗사람들이란 작자가 내 부모뻘 혹은 삼촌이모뻘이라는 게 아직도 안 믿긴다. 이후로 내가 윗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나잇값 못하는 선배들을 볼때 나의 mood

이런 나는, 당연히 회복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뭐가 뭔지 모르는, 왜 일어났고 내게 그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아 하지만 여러분 걱정 마시라 나는 쫀 것 치고는 이 모든 사람들을 꽤 잘 대응하고 나왔다. 진짜 뚝배기 깨고 싶었는데 내 인생을 저것들 때문에 교도소흔적을 남길 순 없었다.)


그러나 내게 회복만의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당장 생계가 끊겼으며 신입이라기엔 나이가 이미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뭐라도 해내야만 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상태로는 넓은 시야가 차단되었고 몸과 마음이 고생만 하고 유의미한 결과는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냥 노력에 대한 나의 자신감만 상실했다.

발버둥친 시간의 대가가 이딴거라니

회복이란, 원치 않은 내상이든 외상이든 피해를 받은 사람이 상처를 돌보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다. 우리는 원하지 않은 피해와 상처였음에도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받았을 텐데 운이 안 좋았을 뿐임에도 허락되지 않았다. 애초에 운이 안 좋은 것 자체가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누가 거기 가래, 그거 네 선택이잖아. 지랄 마라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도 거기 안 갔다. 그 기간만큼은 어느 정도는 지체된다. 이런 일을 겪기 전의 속도와 효율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몇 번 죽을까, 하고 생각하던 나는 올해가 가기 전에 나랑 타협을 했다.


내 전쟁만 참여하기로 말이다.

말이 좀 거친데, 다시 이렇게 말하겠다.


내 게임만 하기로 결심했다. 아니 결심이 아니다. 사실을 인정했다. 내 게임만 할 수 있더라.


저 옆은 리듬 게임을 하고 저 옆은 배틀 그라운드를 하는데 나는 알트에프포 같은 걸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알트에프포는 캐릭터가 너무 쉽게 d지게 진행되는 게임으로 모두가 개발자가 어디 있는지 안부를 궁금해하는 게임이다^^) 그렇다고 리듬 게임이나 배그를 부러워하면 내 앞의 알트에프포를 깨는 속도는 마이너스에 가까워질 것이다.

혜안님 엔딩 깨주세요.

그래서 회복도, 나아가는 속도도 내 안에서 주시하면서 조율해 가기로 했다.


빠르게 대기업에 취직하거나 좋은 시험에 붙어서 안정적으로 다니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모습은 아쉽게도 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올해, 일단 취직을 하려고 한다. 정말 내가 대기업을 가고 싶다면 재직하면서 이직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대기업 가고 싶은 이유도 나랑 비슷하게 출발하거나 늦게 출발한 애들이 가서 빡쳐서 가고 싶은 거다. 나는 극도로 허세가 심하고 남들 눈을 신경 쓰기 때문이다.

이제 더 보여줄 추한 모습이 없다.

식단 관리도 집착은 그만하려고 한다. 그냥 내 몸, 정신이 건강하기 위해 맛있는 것을 먹고 운동하되, 저녁밥만 조금 줄이거나 나를 달래려고 한다. 내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약속도 줄이거나 취소했다. 나를 돌봐야 할 것 같다. 친구들한테 미안한테 너희한테 관심 줄 에너지와 여력이 없다.


나를 돌보면서 나는 또 운동하고 공고 찾고 이력서 검토를 해보겠지. 마음이 쓰라리겠지, 대기업 공고는 끝났고 운이 안 좋으면 작은 곳도 올해는 못 갈 수도 있으니까. 억울해서 누군지도 모르는 곳에 대고 쉐도우 복싱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럼 또 그러다가 다시 내 게임에 집중해야겠지. 왜 안되었는지 뭘 수정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일단 눈앞에 세이브를 하나씩 세워나가면서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당장 모든 걸 포기하고 비행기를 타고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눈을 감고 싶다. 그런데 곧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현실에 발이 묶이는 건 가끔 이렇게 도망가지 않고 삶을 지속하게 해 주는 버팀목이 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