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짜장면이 싫다고 말했나!!

척척척

by 쫄지마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엄마의 지령으로 운전면허를 땄다. 그러고는 그 시절 가장 핫했던, 뒤쪽 등이 고양이 눈처럼 생긴 신형 아반떼를 선물 받았다. 차를 몰고 다니는 대학 새내기라니. 거기에 교양 수업으로 첼로까지 배웠다. 무거운 첼로를 집으로 옮겨놓기 귀찮아 뒷좌석에 늘 싣고 다녔는데, 그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와…. 첼로도 배우고, 차도 있고, 쟤는 부잣집 딸이 분명해!” 이런 오해는 금세 퍼졌고, 문제는 내가 그 오해를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역할에 충실했다. 첼로 실은 아반떼는 어느새 나의 포장지였고, 나는 그 포장지 안에서 ‘있는 사람’ 놀이에 취해 있었다.


볼링 동아리에 가입하고, 동아리 모임엔 늘 첼로 실린 아반떼를 타고 등장했다. 그러던 어느 주말, 동아리 볼링 대회 뒤풀이가 중국집에서 열렸다. 평소 뒤풀이엔 잘 안 가던 나지만, 이날은 선배들도 총출동한 행사라 빠지기 어려웠다. 문제는 회비였다. 나는 돈을 안 챙겨 왔다. 물론 “선배님, 제가 오늘 회비가 없는데요~” 하고 웃으며 말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도도한 부잣집 딸’이란 이미지에 발이 묶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배 안 고파요~”라며 짜장면을 참았다. 그날 짜장면 냄새는 왜 그렇게 매혹적인지. 남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배고픔을 참는 건 거의 수행이었다.


모두가 식사를 마치고, 선배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다. 어디 다니는지, 직급은 뭔지, 자랑이 쏟아졌다. ‘그랬으니 후배들 앞에 당당히 나타났겠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서비스로 나온 만두를 집어들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얼굴이 길고 유난히 하얀 남자 선배 한 명이 일어나 말했다.


“저 대기업 다닙니다! 수고한 후배들을 위해 오늘 음식값은 제가 쏘죠!”


그리고 이어지는 호탕한 웃음과 박수, 환호. 하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내 눈엔 눈물이 핑 돌았다. 너무 놀라 눈물을 억지로 거두고 모두와 함께 환호하며 속으로 외쳤다.


‘미친놈…! 그걸 왜 이제 얘기하냐고!!!’ (정확히는 좀 더 과격한 표현이었다.)


당장 면을 흡입할 순 없었지만, 새까맣게 타버린 마음을 샛노란 단무지 하나로 꾹꾹 눌러 삼켰다.


그 이후에도 나는 종종 ‘척’하다 깨졌다. 새로 생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와본 척하다가 테이블을 음식 창고로 만들어버렸고, 서비스로 나온 빵이 너무 맛있었지만 돈 내는 줄 알고 참았다. 좋아하던 선배에게 고백받았을 땐 쿨한 척하다 외로움에 야식으로 뱃살만 늘었다. 그땐 모른다고 말하는 게, 없다고 말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게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 지금은 조금 다르다. 모르면 묻고, 어렵다고 말하고, 때로는 ‘엄마도 잘 모르겠어’라며 아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러면 아이가 가르쳐준다.


아직 못 놓은 척이 하나 있다면, ‘괜찮은 척’. 이건 이상하게 꽤 괜찮다. 가끔은 진짜 괜찮아지기 전까지, 버티는 데 이만한 도구도 없다. 엄마로 사는 일도 마찬가지다. 지레 겁먹고 쫄지말고 모른다고 하자.


“엄마도 처음인데 잘하는 게 이상하잖아? 괜찮아!!”


그렇게 괜찮은 척이 멋진 엄마의 주문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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