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에서 찾은 평화

오늘도 무사히 유쾌한 부부스토리

by 쫄지마


이틀 동안 나의 개인적인 저녁 약속이 이어졌다. 집안 식구들은 남편의 주도하에 저녁을 해결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그 자유의 끝은 너무도 선명했다. 싱크대에 산처럼 쌓여 있는 접시들, 기름때가 번들거리는 프라이팬, 그 사이로 꼬물꼬물 기어 나오는 작은 벌레들. 순간, 내 눈동자가 흔들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혈압이 치솟았다.


“이건 대체 누구 몫이야? 저녁을 먹었으면, 최소한 설거지 정도는 해둬야지. 몇 날 며칠을 그냥 두는 건 무슨 배짱이야?”

머릿속에서 불평이 쏟아졌고, 당장 소리를 지르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예전처럼 곧장 터지지 않는다. 오랜 결혼 생활이 내게 가르쳐준 게 하나 있다. 바로 ‘화를 내기 전, 반드시 역공 가능성을 체크하라’는 법칙이다.


나는 빠르게 머릿속 계산기를 두드렸다.


이번 주 저녁 약속 횟수? 공평하게 세 번씩 나갔다. 오케이.


고3 아들 밤늦게 데리러 간 건? 내가 두 번 다녀왔다. 완벽.


아침 식사 준비? 다들 싫다고 해서 따로 한 건 없다. 패스.


청소는? 이틀 전, 1·2층을 내가 다 했다. 완벽 클리어!


‘좋았어. 이제는 당당히 화를 낼 자격이 있다.’

속으로 그렇게 다짐하는 순간, 번쩍 빨래가 떠올랐다.


그 많던 빨래를 돌리고, 널고, 말리고, 개켜둔 건 다름 아닌 남편이었다. 상상해보라. 내가 설거지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남편이 “빨래는 내가 다 했잖아”라며 반격하는 장면을. 100% 확실한 시나리오였다. 그 한마디면 내 모든 분노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나는 괜히 괴성만 질러댄 사람이 될 터였다.


결국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싱크대 앞에 섰다. 그릇을 하나씩 닦아내며, 마음속 화도 조금씩 씻겨 내려갔다. 기름때 묻은 접시가 반짝반짝 빛을 되찾듯, 내 속의 끈적한 분노도 사라져갔다.


결혼 생활이란 게 꼭 전쟁 같지는 않아도, 늘 작은 신경전이 깔려 있다. 누가 더 많이 했는지, 누가 덜 했는지, 이 끝없는 회계 장부 싸움. 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누군가가 먼저 조용히 치워주고, 대신 채워주는 것. 그게 결국 집을 평화롭게 굴러가게 만든다.


나는 설거지를 마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남편이 빨래로 채워준 빈자리를, 내가 설거지로 덮어냈다. 결국 서로의 손길이 빈틈을 메우며, 집안은 또다시 ‘정상 운영’으로 돌아갔다.


오늘의 결론은 분명하다.

결혼의 진짜 평화 협정은 로맨틱한 여행지에서 맺어지는 게 아니다. 침실에서 속삭이는 사랑의 맹세도 아니다. 바로 싱크대 앞과 빨래 건조대 앞에서 체결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설거지로 평화를 서명했고, 남편은 빨래로 조약을 갱신했다.

평화 협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내일도, 아마 모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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