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개인 VS 사회

Karl Paul Reinhold Niebuhr

by Ruddyd Als

Karl Paul Reinhold Niebuhr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원저의 제목을 그대로 따왔다. 말 그대로 인간 개개인은 도덕적 일 수 있으나 사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럴 수 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0%는 아닌 것이다.


첫 번째로 말하고 싶은 것은 책 내용을 이해할 수 있을 듯 없을 듯하다는 것이다. 원서의 내용을 그대로 직역한 듯한 문장과 긴 호흡의 문구,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정말 어려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고두고 읽어볼 만한 한 번 읽은 것만으로는 내용을 알 수 없으니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도덕적이다. 하지만 그런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단도 진입적으로 왜 그런가?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집단은 개인과 마찬가지로 생존의 본능에 뿌리를 두면서 동시에 그것을 넘어서려는 팽창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개인도 이기적인 면이 있고 그것이 집단을 이루면 필연적으로 이기심이 증폭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개인의 도덕적 선의지(저자는 선의지 그 자체만이 선하다고 말하고 있다.)와 사회의 지성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선에는 일정한 한도가 있지만 본성은 한도가 없다는 말이다. 저자는 여기서 인간의 상상력을 말하면서 인간의 탐욕은 그 상상력 때문에 더 커지며 상상력이 품고 있는 고유한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만족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계몽주의자들이 설파했던 인간의 무지함이 걷히면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고 저자는 또한 말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치밀한 사회교육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동정심을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되기는 무리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은 선하나 사회 공동체는 악을 행할 수 있다 라는 명제는 익히 아는 바이다. 하지만 개인은 선할 수 있다는 말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본성, 성정 등에 있어서 1%만 선하고 99%는 악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개인으로 바라볼 때는 그 1%가 발현되어서 선하게 보일 수 있지만 어느 한순간 개인의 이익과 관련이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99%가 발현되어서 악을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개인에게 있어서의 선함과 악함의 비율이 다를 수는 있지만 본질적으로 악과 선이 발현되는 순간은 다르다는 것이다.


뙤약볕에 수레를 끌고 가는 어르신을 보면 가서 도와드리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 본성에는 악함도 있다. 내가 그 어르신을 도와드리는 것이 나의 악함, 더 자세히 말하면 선하지 않음(뙤약볕에 도와드리면 덥고 땀도 나서 불쾌하다. 따라서 나는 도와드리지 않겠다.)을 이길만한 이익이 되기 때문에 도와드린다는 것이다. 만약에 힘든 일을 겪은 후 그 어르신을 보았다면 그래도 도와드릴 것인가?


이처럼 인간과 사회의 선함과 악함은 개인의 도덕심이 있고 없고 와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상황만이 존재할 뿐이다.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인간이 같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인간에게는 공통된 그 무언가가 있고 극히 예외적인 인간만이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행동을 한다. 그런 인간들이 사회를 선함으로 이끌고 사회가 악으로 가는 것을 일정 부분 막는다고 생각한다.


개인윤리가 사회윤리의 차원으로 확대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의 이기심을 넘어서는 사회집단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기심이 사회의 특권계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저자는 책에서 사회의 특권계층이라는 집단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앞과 뒤가 다르다는 것이다. 앞에서는 선함을 이야기 하지만 뒤로는 악함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계급적 특권에서 비롯되는 사회 불의를 도덕적 설득이나 설교만으로는 치유할 수 없음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집단의 이기적인 행동은 어떻게 제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투쟁적 행동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사회집단이 가지고 있는 이기심을 꺾기 위해서는 투쟁과 같은 물리적 강제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강제력을 동원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악순환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이기주의 집단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정치권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비폭력 저항의 대명사인 간디를 언급하고 있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그 자체가 선의를 행한 것으로서 저자는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집단의 우두머리가 내리는 결정은 개인의 결정이 아닌 집단의 결정이며 집단의 결과이다. 그 집단은 개인들의 이기심이 모인 집합체로서 필연적으로 악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개인의 선함이 모여서 선한 집단(모든 면에서 선할 수는 없지만)을 이룰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선한 집단의 일탈적 악함에 대해서는 주목을 하지만 그 선함에 대해서는 주목하지 않는다. 인간은 필연적으로 인간이나 집단의 좋은 면보다는 악한면에 더 주목하지 않는가.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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