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2] 미술, 어떻게 보고 읽고 느끼는가.

진중권

by Ruddyd Als

우리는 예술 특히 미술작품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할까. 진중권은 『미학 오디세이 2』에서 예술은 정보 소통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오직 예술로만 전달할 수 있는 그런 정보, 그것을 예술적 정보라 명명한다.


그렇다면 이 예술적 정보는 어떠한 과정을 거쳐 수용자 즉 감상자의 눈으로 들어올까. 간단하게는 3단계가 있다. 이미 다 알지만 바로 발신자 → 전언 → 수신자 단계이다. 발신자는 바로 예술작품을 창작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전언은 예술가가 창작한 작품이고 수신자는 예술작품의 감상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너무 단순하고 뻔한 이야기다. 그 사이에 바로 약호화와 해독이 들어간다. 약호화는 바로 발신자와 전언 사이에 들어간다. 이것은 예술가가 자신의 생각과 사상을 작품 속에 녹여내기 전 단계이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재료를 이용해서 구체화하는 작업이 바로 약호화이다. 그리고 해독은 전언과 수신자 사이에 들어간다. 감상자는 사전에 아무런 정보도 없이 미술작품을 대하면 당황해한다. 특히 현대미술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작품을 해독하기 위해서는 예술 언어를 알고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해독이다. 마치 전쟁 중에 아군으로부터 암호를 보내고 이것을 해독하는 과정이 일련의 미술감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미술감상을 하는 것은 일련의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더 정확하게 하이데거는 예술 작품이라는 것은 존재자의 진리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진리란 지식의 올바름이 아니라 바로 껍데기를 벗겨낸 사물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모두가 알다시피 고흐의 구두라는 작품 속에는 구두를 신고 있는 인간의 여러 가지 모습이 드러나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했다. 진리는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고 그것을 은폐하고 드러내려는 즉 밝힘과 가림의 투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볼 줄 알고 향유할 줄 아는 즉 지각하고 관조하는 활동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예술 작품은 작품으로서 정립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진중권은 하르트만의 전경과 후경을 설명한다.


전경은 작품의 표상적인 부분이다. 예를 들면 형태, 색감 등의 물질적인 부분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경으로부터 떠오르는 정신적 내용을 후경이라고 한다. 다시 이 후경은 몇 가지 층위로 나뉘는데 궁극적으로는 작가의 철학적, 이념적 사상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르트만은 주장한다.


우리는 예술작품이든 문학작품이든 일단 선입견을 가지고 감상을 한다. 선입견을 아예 가지지 않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선입견을 가지고 작품을 평가하기 때문이다. 선입견을 배제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무로부터 유를 창조해낸다는 말인데 인간은 신이 아닌 이상 그것은 힘들다. 이러한 선입관 즉 선이해를 현상학에서는 지평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인간이 예술에 관한 많은 선입관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든 작품에 대해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마다 풍미하는 사조가 있고 그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공통된 무언가가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예술작품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많이 알려진 뒤샹의 ‘샘’이라는 작품은 당시에는 작품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은 예술의 고정관념을 뒤엎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렇게 만들게 하는 힘은 예술계의 인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술계에서는 어떤 사물에게는 예술의 자격을 부여하고 어떤 작품에게는 그러지 않을까. 나는 이 점이 무척 궁금했으나 저자는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에셔가 그린 〈그리는 손〉처럼 돌고 도는 현상인 것이다.


현대미술을 관통하는 세 가지 주요한 낱말이 있다. 바로 추상, 표현, 레디메이드이다. 추상은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극도로 파편화된 형태로 나타낸다. 대표적인 작가로 몬드리안을 들 수 있는데 몬드리안은 대상을 추상화시키면 그 대상의 본질이 드러난다고 생각하였다. 현대미술에서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작품이 없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리고 표현은 예술가의 주관적 내면적 감성을 나타낸다. 그러다 보니 형태가 왜곡되고 강렬한 색체가 사용된다. 피카소의 작품이 대표적으로 형태가 왜곡되어 있고 마티스가 강렬한 색채를 쓴 것에서 알 수 있다. 레디메이디는 말 그대로 기성품이 그대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이것은 다다이스트들이 즐겨 사용한 것인데 기성품이더라도 오브제로서 작가의 생각과 개념이 들어가 있으면 예술작품으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현대에는 모든 것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 백남준이 비디오 아트를 창안해낸 것을 시발점으로 해서 기계를 이용한 즉 현대 과학을 이용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한 작가의 생각을 수용자 즉 감상자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가 스스로 감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하나의 큰 흐름이다. 이것을 가다머는 예술작품의 개방성으로 바라보았는데 가다머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근본적인 법칙은 없으며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감상자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2』는 마그리트의 작품을 책의 주요한 주제로 삼고 있다. 틈틈이 아니 아주 많이 마그리트의 작품을 삽입하면서 그가 설명하고자 하는 미학의 흐름이 어떻게 마그리트와 연결되어 있는지 친절하게 말해준다. 초현실주의자인 마그리트는 작품을 통해 존재하기는 힘드나 존재가 불가능하지만은 않은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에셔의 작품과는 다르다. 에셔의 작품을 현실에서는 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거의 예술이 의미 정보 전달에 중점을 두었다면 현대 미술은 미적 정보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즉 누구나 보기에 정렬된 형태의 작품보다는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는 작품을 통해 대상으로부터 해방된 색체와 형태를 바라보기를 원한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일련의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멋대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는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서는 많은 책을 통한 미술의 이해와 많은 감상이 필수적이지 않을까 하는 뻔한 생각을 해보았다. 비록 저자는 책을 통한 미술의 이해라는 것이 결국은 직접적인 미술작품의 이해가 아니라는 점에서 자신이 쓴 이 책도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책을 통한 지식의 섭렵이 하나의 선입관을 형성해서 미술에 관한 나의 이해를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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