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 오디세이1] 왜 아름답다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진중권

by Ruddyd Als

미학이라는 단어는 누가 처음에 만들었을까. 독일의 철학자 바움가르텐 Alexander Gottlieb Baumgarten이다. 그의 업적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처음으로 인간의 ‘감성’을 학문의 연구대상으로 삼았다는 데 있다. 물론 그 이전에 인간의 감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것은 없었다. 인간의 ‘지성’은 인식론에서, ‘의지’는 윤리학에서 연구를 했지만 말이다.


현재 우리는 예술이라는 것은 감성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르네상스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예술은 이성적 작업이었다. 사람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 사고를 바탕으로 예술작품을 창조해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예술이 감성의 영역이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어떤 것이 아름다운지에 대해 탐구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움가르텐이 보기에 미와 예술은 일종의 인식인데 감성을 이용한 인식 즉 감성적 인식인 것이다. 과거 사람들이 감성을 인간의 이성을 유혹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했던 것을 이성의 능력을 보완하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들은 순수예술이라는 것은 진리나 도덕적 교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 예술은 타락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난 사고를 한 사람이 바로 칸트이다.


칸트에게 있어서 취미 판단 - 미에 대한 판단 – 은 인식이 아니다. 미라는 것은 객관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떠한 사물을 보고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그 사물 안에 아름다움이 들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에 따라서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그 사물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다. 이렇게 취미 판단이라는 것은 내 주관의 쾌와 불쾌인 것이다. 대상에 대한 인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라는 것은 개념화될 수 없다. 왜냐하면 미는 모든 공통된 요소 즉 인간이 모두 동의하는 요소를 뽑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아름답다고 하는 사물을 알고 있다. 예를 들면 장미꽃, 금강산의 경치, 알프스의 설원 같은 것들 말이다. 칸트는 이러한 것을 보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취미 판단이라는 것이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인간은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는가. 결국 인간은 같은 마음 즉 ‘주관적’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주관’의 구조가 같기 때문이다. 즉 미적 공통 감이라는 것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이제 어떠한 예술작품을 가지고 말할 때 ‘무엇이 아름다우냐’가 아니라 ‘언제 아름다우냐’라고 묻는 말로 바뀌어야 한다고 진중권은 말하고 있다. 시대에 따라서 인간들의 미적 공통 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대에 따라서 예술의 발전방향을 제시한 헤겔에서도 알 수 있다. 고대에는 상징 예술, 예를 들면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같은 건축이 주를 이루었다. 상징 예술이 이념에 충분히 성숙하지 않아 물질적 매체에 압도당할 때 생긴다. 그다음으로는 고전 예술로 넘어가는데 여기에서는 대표적인 예술품이 바로 조각이다. 이념이 충분히 구체적으로 표현된 조각이 바로 이 시대 바로 그리스 시대이다. 다음으로는 낭만 예술이다. 시, 음악, 회화가 바로 대표적인 예술인 것이다. 정신이 더욱더 발전하여 물질적 매체를 압도하고 이념은 너무 자라서 형상과 조화로운 통일 속에 머물 수 없는 것이다.


예술 즉 회화의 출발점은 고대인들이 동굴 속에 그려놓은 황소 그림이다. 고대인들은 주술적인 혹은 신체훈련을 위해 동물의 그림을 그렸다. 그림 속 황소를 가상의 황소로 삼아 사냥 연습을 하고 주술을 걸었다. 이것은 효과가 있었고 이후 계속되었다. 사실 처음으로 알타미라 동굴 속에서 본 황소 그림을 본 사람들은 놀랐다고 한다. 어떻게 고대인들이 이렇게 사실적으로 사물을 묘사할 수 있었단 말인가. 후대인들이 묘사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뛰어난 묘사력에 놀랐던 것이다.


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의 머릿속에 아직 선경험이 없었기 때문이다. 즉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사물을 그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미 현대인들은 선경험 즉 지각적 사유를 가지고 있고 생각으로 예술을 하기 때문이다.


사물을 참모습 즉 어떠한 사물의 이데아는 플라톤이 말한 대로 이미 우리의 머릿속에 있었다. 하지만 레테의 강을 건너면서 그 이데아는 사라지고 겉 형상만 흉내 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것을 또 흉내 내는 예술을 플라톤은 진리에서 두 단계나 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예술을 어떻게 나타내야 할까. 인간들에게서 시대나 공간을 초월한 예술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가치로서나 미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정녕 불가능한가라는 물음이 든다. 시대에 따라서 달라지는 예술사적 사조는 인간 정신의 고매한 발전이며 성장일까 아니면 그 반대로 후퇴일까. 작품 속의 정신이 중요한가 아니면 작품을 만들어 내는 물질이 중요할까. 아니면 둘 다 가치 있는 것으로 봐야 할까. 여러 가지 물음이 남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이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를 읽고 『미학 오디세이 1』을 읽었는데 『미학 오디세이 1』이 가장 이해하기가 어려웠고 2, 3은 읽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 만약에 이 책을 읽는다면 2, 3을 읽은 뒤 1을 읽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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