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열고 들어오라."

나쓰메 소세키(일본어: 夏目 漱, 石なつめそうせき)

by Ruddyd Als

소스케와 오요네는 부부사이이다. 어머니가 먼저 사망을 하고 아버지가 그 후 6년이 지난 뒤 사망을 하게 되자 소스케의 가계는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스케는 대학 2학년 때 중퇴를 하게 된다. 동생인 고로쿠는 숙부에게 맡기고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정리하는 일은 숙부에게 맡기게 된다. 숙부는 소스케에게 숙부가 남긴 유산이 얼마가 되고 빚을 청산한 뒤 어느 정도의 재산이 남았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관련한 일은 숙부에게 일임을 했던 소스케는 급한 대로 임시변통할 돈을 마련해 준 숙부에 대해, 그리고 고로쿠를 맡아 주고 있는 것에 대해 만족을 하고 아버지가 남긴 유산에 대해서는 일단 차후에 숙부에게 말을 꺼내기로 한다.


소스케와 오요네는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서로를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그들 부부는 체념을 하는 듯한 말투와 행동으로 살아간다. 결혼을 한 지 6년여 정도 지났지만 금실이 좋은 부부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 서로의 존재일 뿐이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로 만족을 했고 그들은 산속에 있는 마음으로 도회에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스케는 고로쿠로부터 숙모가 더 이상 자신을 돌볼 수 없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전해 듣는다. 도쿄 변두리 절벽 아래 셋집에 살던 소스케 부부는 고로쿠를 맡아야 한다는 사실에 난처한 입장에 처한다. 소스케는 숙모를 찾아가 아버지가 남긴 유산에 대해서 물어보지만 이러저러한 용도로 사용을 했다는 답변을 듣는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못한 소스케는 아버지가 남긴 병풍 하나만을 가져온다. 그리고 늘 그러했듯이 이러한 자신의 모습에 대해 모든 잘못은 나에게 있다는 체념 어린 말을 아내에게 말한다. 집안 형편이 좋지 못한 소스케는 일단 여차저차해서 고로쿠가 묵을 방 하나를 자신의 집 한 켠에 마련을 하게 된다.


집주인인 사카이집에 도둑이 든 것을 계기로 소스케는 사카이와 친교를 맺게 된다. 고로쿠는 소스케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고 이내 휴학을 하게 된다.


사카이와 친분을 맺은 소스케는 사카이의 집에 아이들이 뛰노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병풍을 고물상에게 몇 번의 흥정 끝에 만족해할 만한 가격에 팔게 된다. 하지만 그 병풍이 고물상의 손에서 사카이의 손으로 가, 결국은 자신이 받았던 금액의 3배 정도에 팔렸다는 것을 사카이로부터 듣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사카이와 소스케는 더 친분을 쌓게 된다. 그리고 소스케는 사카이에게 고로쿠를 자신의 서생 – 일종의 가정교사 –로 들여보내주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게 된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소스케는 승낙을 하게 된다.


소스케 부부에게는 아이가 없다. 오요네가 몇 번 임신을 한 적이 있지만 유산을 하거나 사산을 한 것이다. 아이가 생길 가망이 전혀 없다는 것을 오요네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소스케는 아이가 그렇게 된 것이 필경 살림이 궁핍해서 생긴 일이라고 자책을 한다. 오요네는 길거리에서 점을 봐주는 사람으로부터 아이를 못 가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이유가 남에게 몹쓸 짓을 해서 그렇다는 말을 듣게 된다.


사실 소스케와 오요네는 정상적인 사유로 결혼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소스케는 친구인 야스에게 오요네를 소개받았는데 오요네는 야스이와 동거를 하고 있던 상태였다. - 소설 속에는 이 부분에 관해 자세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단순히 소스케와 오요네가 시간이 지나 점차 친해졌다는 언급 이외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다. - 그리고 야스이는 소스케와 마찬가지로 중퇴를 하게 되고 만주로 가게 된다.


소스케는 사카이로부터 놀랄만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야스이의 소식을 사카이에게 듣게 된 것이다. 사카이의 동생이 만주로 가있는데 그곳에서 야스이를 만나고 자신의 집에 올 예정인데 같이 참석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거절을 한 소스케는 혼미해진 정신을 수습하기 위해 산문 – 일종의 단기간의 출가 비슷한 –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야스이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고 만약에 야스이가 사카이의 집에 빈번하게 출입을 한다면 지금 셋집을 정리하고 어디론가 가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야스이는 곧 만주로 다시 떠나게 된다.


관청의 관리로 있던 소스케는 자신이 인력 구조조정으로부터 살아남고 급여도 5엔 정도 오른 것에 만족을 한다. 그리고 목욕탕에서 모르는 사람과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면서 봄이 왔지만 곧 겨울이 올 것이라는 말을 하

는 것으로 소설을 끝을 맺는다.


전에 「마음」에 관해서 글을 썼었지만 이 작품 역시 시대상황을 알 수 있는 문구는 어휘를 제외하고는 없다. 책의 처음 부분에 나오는 이토 히로부미의 사망사건을 제외하고는 이 작품이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쓰인 것인지 추정을 하기가 어렵다. 근대 소설의 시초라고 불리는 소세키가 왜 그러한 이름이 붙여진 것인지 짐작을 할 만한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줄거리, 즉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로 이어지는 일련의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특별한 위기라고 할 만한 것이 없고 갈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주인공의 심리만 당대의 소설과는 달리 자세히 묘사될 뿐이다. 현대 소설과의 차이라면 현대 소설은 그 밀도가 높고 소세키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약간 느슨할 뿐이다. 따라서 뭔가 사건이 벌어지고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는지에 관해 관심이 많은 독자라면 심심하다고 느껴질 법도 하다. 나 역시 그러했다.


소설을 왜 읽는가. 아마 그것은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대리만족일 것이다. 그것이 작품 속의 주인공의 삶이 비극이든 희극이든 말이다. 소설을 통해 교훈을 얻고 시대상황을 파악한다는 것은 현재 시점에서는 맞지가 않다. 사람은 하나의 인생을 살지만 소설을 통해 여러 인생을 살고 그들의 삶을 염탐해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은 소설을 창조하고 읽는다. 누구나 타인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 하지 아니한가.


소스케와 오요네는 소설에서도 묘사했듯이 자신들만이 중요하다. 소설 중간중간에 궁핍한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지만 그것은 그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어쩔 수 없으며 감내해야 하는 현실이다. 참는 것이다.


삶에 대해 무기력한 소스케는 문門을 끊임없이 두드린다. 하지만 두드리기만 할 뿐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하지는 않는다. ‘않는다’라기보다는 ‘못한다’라는 말이 옳을 것 같다. 소세키는 그 문을 ‘혼자 열고 들어오라’라고 말하고 있지만 소스케는 그러지 못한다는 말이다. 작가가 원하는 인간의 모습을 자신의 작품에 투영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소세키의 작품은 그것이 정 반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문을 열지 못한 소세키는 문 밖에서 두드리기만 할 것이다. 어제도 그러했고 오늘도 그렇게 하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오요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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