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노트

뒤로 가는 손가락

다시 쓰는 시간

by NIL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은 아주 여러 가지이고 가끔은 특이하다.


특히 한번 각인된 인상은 다음 만날 때 출발점으로 다가온다. 내 얼굴은 살짝 비대칭이다. 거울을 볼 때 가끔 느끼지만 그렇게 티 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친구 중에 유독 한 녀석. 만날 때마다 그것을 지적하는 친구가 있다. 일 년에 한두 번 볼까 하는 사이인데, 만나면 첫인사가 항상 나의 왼쪽 치아가 튼튼한가를 묻는다.


그 친구 생각에는 나의 왼쪽 어금니에 문제가 생겨 볼이 부었냐는 질문이다. 수십 년 동안 만날 때마다 그 질문을 한다. 그 질문에 답을 하면서 지난번에도 그것을 물어보았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도 없고, 화를 낼 수 도 없는 노릇이다. 별 문제없다고 대답을 해 주는데 그 친구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가 기억하는 나의 모습은 훤씬 어린 시절의 모습이란 것을 알았다.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하루 종일 보던 얼굴에 익숙한 친구는 각인된 그 모습에서 출발할 뿐이다.


내가 그 친구를 볼 때마다 놀라는 것은 굉장히 살이 쪘다는 점이다. 특히 배가 많이 나왔다. 깊이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 녀석의 배가 지금 만큼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 역시도 학창 시절 작고 날렵하던 친구의 모습을 지금 현재와 대비하고 있을 뿐, 세월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해왔을 친구의 모습을 따라오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그 친구 또한 나의 무관심에 섭섭하기도 할 것이다.

코로나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어 가면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놀란다. 마스크 속에 있던 그들의 하관이 드러날 때마다 '아, 이 사람이 이렇게 생겼었지'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사람들의 모습은 언제 모습인가. 그중에는 앞서 말한 친구처럼 오랜만에 보는 얼굴도 있지만 거의 매일 사무실에서 마주치는 얼굴도 있다. 그럼에도 마스크를 벗는 얼굴이 낯설다. 저 사람도 나이가 드는 모양인지 볼 살이 많이 빠졌구나. 저 사람은 코로나 기간 동안 운동을 했나 턱선이 날렵해졌네. 물론 그들도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하겠지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 한 친구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2019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요양 병원에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 중 면회도 안되고 해서 가족들을 안타깝게 하더니 어느 정도 분위기가 풀리고 가족들의 면회가 자유로워지지 결국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딸의 손을 꼭 잡고 마무리하지 못한 아비의 의무를 이야기하며 미안하다 말하고 떠났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대한 제한이 많이 풀려 우리 친구들도 오랜만에 많이 문상을 와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영정 사진을 보는데 그 사진은 우리가 지금 보다 훨씬 어렸을 때 찍은 모습이었고 그것이 내게는 진짜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래, 네가 이렇게 생겼었지"


아주 더운 여름날 체육 시간에 그늘에서 쉬고 있는 나의 다리털 사이에 개미를 던져놓으며, 개미 녀석들의 정글 탐험을 관찰하자던 그 아이는 그렇게 그 얼굴로 영원히 나에게 기억될 것이다. 개미의 움직임을 따라 손가락을 휘저으며 앞으로 전진을 외치던 그 아이는 이제야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부고를 받기까지 십수 년 동안 우리는 만나지 못했었다. 항상 좋은 친구였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영정 사진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사실 나는 그 친구의 최근 얼굴을 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 친구는 영정 사진에 있는 내가 기억하는 그 얼굴로 남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다는 것은 순간을 기억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내게 왔었는지 그 출발점에 우리는 머물러 있다. 지금도 신촌 거리를 지나다 보면 그 시간의 낯익은 뒤통수들이 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만나더라도 우린 마치 어제 만난 듯 다시 그 출발점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왼쪽으로 음식을 많이 씹어서 그쪽이 더 발달했네..."

꼭 설명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냥 나는 건강하고 염려해 줘서 고맙다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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