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노트

MBTI에 관한 단상

다시 쓰는 시간

by NIL

언제부턴가 MBTI라는 것이 우리 일상속으로 들어왔다.

특히 젊은 세대가 여기에 열광하며 과몰입하는 모습이다.함께 테스트하며 서로를 알고 이해하려 하는 모습이 새롭기도 하다. 방송이나 유투브 이런 매체들에 의해 과장되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친숙한 개념으로 다가오는 것은 확실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 어색함을 깨기 위해 서로의 MBTI를 물어보고 그것을 또 대답해주며 대화를 이어간다는 사실에 놀랐다. 물론 서로가 공통점을 찾고 다른 점은 이해해가며 친밀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하지만, 초면에 대놓고 성격을 판단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심하면 무례하게 느끼지 않을까?


지금처럼 확산되기 전 회사 교육 과정중에 MBTI 검사를 실시했다.

처음으로 팀장이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증진 과정이었다. 팀장 자신과 구성원들의 업무 스타일을 알고 그 특성을 반영하여 팀을 운영한다면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인터넷에 있는 간단한 설문이 아니라 전문 기관에서 준비한 설문지에 대답하며 참석자들을 진땀을 흘렸다.

마치 시험을 보는 듯한 분위기, 강의실에는 정적만이 감돌고 신중하게 답안지를 채워갔다.드디어 전문 강사의 종료 신호가 떨어졌지만 한 문제도 놓칠 수 없다는 마음으로 끝까지 문제지를 쥐고 있는 선배들도 있었다.


떨리는 채점 시간, 옆사람과 답안지를 바꿔들고 강사의 지도에 따라 채점에 들어갔다. 유형별 답안 갯수를 센 후에 미리 준비된 표에 기입하였다. 그리고 떨리는 판정 시간, 서로 답안지를 바꿨던 두 사람은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 안도했다. 다른 테이블은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우리 두사람은 같은 유형이고 우린 훌륭한 팀장이 될거야. 잠시 후 모든 참석자들에 대한 평가 결과가 집계되었다.


강사가 조용히 내 이름을 호명했다.

"이 분은 팀장님이 아니신가요?"

"예. 저는 진행 직원인데, 테스트는 같이 해봤습니다."

"그렇죠. 혼자 IS 로 시작 하거든요... 나머지 모든 분들이 EN 으로 시작하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강사는 알파벳 네글짜를 크게 쓰고 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오래전 일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ISTJ" 였다. 열심히 설명하는데 대충 나의 일하는 스타일과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 이유는 그 다음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 나머지 30명의 교육생은 동일한 유형으로 나왔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팀장 교육생 30명이 전부 'ENT*' 유형이었다.

당시 회사의 승진 연한을 고려하면 그 사람들은 입사 12~15년차 내외의 간부사원이었다. 서로 다른 배경과 성장 과정으로 개성과 꿈을 간직한체 입사했던 젊은이들이 반복되는 세뇌의 과정을 거치며 동질적인 중년 가장 집단으로 변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쩌면 이 결과가 흔히 말하는 기업 문화였다.


교육생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는 서로를 향한 위로의 웃음이었다. 성격 유형 진단 설문지 하나도 정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답해야 했던 한시간 전의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확인이었다. 조직내에서 회사가 원하는 인재상에 근접하기 위해 노력한 세월에 대한 연민이었다. 회사를 벗어나면 서로 다른 유형의 사람이 되지만 회사내에서는 똑 같은 것이 안전하다는 공감이었다. 이 회사안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나 일을 하는 방법에 대해 선배들로부터 물들어왔고 그 물들음이 더 진한 사람들이 그나마 팀장이라는 직책을 받고 이 자리에 모였다는 안도감까지. 그 이후로 계층별 MBTI 테스트가 진행되면서 신입 사원 시절 제각각이었던 직원들이 팀장을 거쳐 임원 승진까지 동질화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사람이 변하는 것인지 특정 유형의 사람들만 남는 것인지. 직급이 올라갈수록 하나로 수렴되는 모습이었다. 어쩌다 한명씩 다른 유형이 나오면, 강사는 그 사람이 우리회사에 얼마나 소중한 인재인지를 강변했다.

모두가 똑 같은 조직은 발전할 수 없다고,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그렇지만 참석자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그는 평소에도 좀 특이했다고 규정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조금 여유를 찾고자 함께 책 읽고 글쓰는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

매주 한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 또는 서평을 쓰는데 처음에는 내가 잘 쓰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한 편 두편 쌓이다 보니 무엇인가 이상하다. 그렇다. 어떤 책을 읽어도 나의 감상은 동일하다. 언제나 교과서적인 주제와 교훈으로 끝내고 있다. 나 또한 수많은 시간동안 사회와 조직이 만든 인격 안에 머물고 있다는 자각. 지금 나의 MBTI 검사를 한다면 회사 안과 회사 밖이 다르게 나올 것인가.


글을 쓴다는 것. 조금씩 벗어나고 내려 놓는 시간이 되어야 겠다. 내가 나를 관찰하며 정답을 찾기 보다는 그냥 있는 나를 만나는 시간으로 만족하도록. 그대로의 마음을 보여 주여야 한다. 지금 함게하는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먼저이다. 내 글을 쓰기전에 다른 글을 읽어보고 비평하기 전에 공감하는 마음. 그것이 필요하다. 어쩌면 MBTI 가 유행하는 이유도 상대를 알고 공감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일지도...

단편적으로 판단하는게 아니고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는 작업이다.


"그래 너는 그렇구나. 우리 함께 재미있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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