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노트

아침마다 목에 칼을 들이댄다.

다시 쓰는 시간

by NIL

"아침마다 목에 칼을 들이대는 그 심정을 아시오?"

대부분 모른다. 그런데 한마디만 하면 안다. 그 지긋지긋한 세월을..


처음 면도를 한 것은 중학교 때였다.

짓궂은 선생 한분이 있었다. 이제 막 자라기 시작한 나의 콧수염이나 턱수염을 잡아 뜯곤 했다. 친구들보다 먼저 수염이 나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한 반에 한 두 명은 있었으니 그분은 하루종일 심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욕실에 굴러다니는 삼촌의 면도기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알고 나선 감염의 우려를 설명하고 일회용 면도기 한 박스를 주셨다. 수염이 많지 않아 매일 할 필요는 없었고, 가끔 그 선생의 눈에 뜨일 시점이 되기 전에 밀었다. 그때만 해도 목에 칼 댈 일은 없었다.


턱에서 목으로 내려온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버지와 삼촌의 의견이 갈렸다. 아버지는 결대로 내려 깎아야 안전하다고 했다. 삼촌은 역으로 올려 깎아야 깨끗하게 밀린다고 했다. 두 가지 방법을 다 실험해 보았지만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아직 수염이 많지 않아 대충 깎아도 버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촌의 방법으로 밑에서 위로 올려 깎다가 면도날이 울대에 걸렸다. 따끔한 느낌과 함께 피가 흐르고 있었다. 분명 어디서 본 장면이었다. 그랬다. 아주 어린 시절 시골에서 닭 잡던 모습이 떠올랐다. 닭의 목을 칼로 툭 쳐서 피를 뺀다고 했다. 그렇게 살아있는 체로 피를 빼는 것이 더 맛있다고 했다. 그때 그 닭처럼 목에서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목에 반창고를 붙이고 학교에 갔다.


대학에 가며 매일 면도를 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용하던 일회용 면도기를 버리고, 질레트 쉐이빙 세트를 구비했다. 일단 면도날의 감촉이 달랐다. 그동안 사용한 면도날이 여름 풀에 낫질하는 느낌이었다면, 새 면도날은 얼음판에 미끄러지는 스케이트였다. 살짝 움직여도 슉 나가며 길을 개척했다. 함께 제공된 쉐이빙 폼을 바르고 거울을 보면 완전 어른이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풍성해진 거품을 밀어낼 때마다 깨끗한 피부가 드러나는 것을 보며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했다.


다리 털보다 많아진 수염은 군대 생활의 걸림돌이었다.

아침저녁 점호 시간마다 동료들보다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단 하루도 건너뛰지 못하고 거친 군대 비누로 비벼대며 면도를 하다 보니, 괜히 턱이 거칠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야간 근무라도 있는 날이면, 아침에 서두르다가 눈 밑에 상처를 내기 일쑤였다. 문제를 줄여보려고 전기면도기를 이용해보기도 했지만 억센 수염을 감당하기엔 모터가 너무 약했다. 수염이 안전망에 끼인 채 기구가 멈춰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찔금 눈물이 났다.

다시 안전면도날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침마다 목에 칼을 들이댄다.

그런데 놀랍게도 어느 날부터 면도날에 집중하지 않게 되었다. 칼을 들고 딴생각을 한다. 얼굴이나 목 어딘가에 상처가 날 것이라는 두려움은 사라졌다. 그날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놀랍게도 그날 하루동안 해야 할 일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앞차 뒤꽁무니만 보고 운전하던 초보 운전자가 어느 날 신호등 앞에서 딴생각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특히 목젖 부근이 예민하다.

항상 비슷한 각도로 정확한 힘을 가해 밀어냄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상태가 다르다. 다 끝내고 스킨을 바를 때, 그 부분이 꺼칠꺼칠하게 느껴진다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별로다. 일을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그 부분을 문지르고 있다. 반대로 깔끔하게 정리된 날은 하루 종일 상쾌하다. 누구를 만나도 덕담 한마디를 더하게 된다. 그리고 욕실에서 생각했던 일들을 차분하게 해 나가곤 한다.


친구들이 면도하지 않고 나타난다.

하나 둘 늘고 있다. 덥수룩하게 기른 녀석도 있고, 콧수염만 자란 놈도 있다. 물론 나름 예술적으로 관리하고 자기 개성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절대 게을러진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확실한 것은 그들의 사회적 위치가 변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

수염을 잡아 뜯을 선생님도 없고, 청결을 지적할 당직 사관도 없고, 결재 서류를 디밀어야 할 상사도 없는 생활이 되었다는 것. 그렇게 자기의 자리를 만들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대견한 녀석들.


그렇게 아침마다 목에 칼을 들이대며 느꼈던 답답함과 초조함의 끝에서 점점 해방되가고 있다.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시절, 귀밑부터 밀어야 할지, 목부터 밀어야 할지 그것마저 결정하지 못하고 두려웠 했던 시절이 있었다. 볼이며 턱이며 무수한 상처를 냈고 지금도 얼굴을 들여다보면 베인 자국이 있다.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새 것으로 바꿔봤지만 중요한 것은 칼을 대는 각도였다. 그리고 숙달된 조교들은 은퇴한다.


그리고 다시 묻는다. 결대로 위에서 내려 깍아야 합니까? 아니면 밑에서 부터 끌어 올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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