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쓰는 시간
양치질을 하다가 거울을 봤다. 왼쪽 볼이 튀어나왔다.
오른 손이 쥔 칫솔이 힘차게 볼 살을 밀어내고 있다. 칫솔을 처음 쓰던 그날부터
항상 칫솔은 오른 손에 들려있었다. 나의 입속은 오른손잡이용 칫솔길만 있을 것이다.
내가 왼손으로 하는 일이 무엇이있나 생각해본다. 거의 없다.
양손을 쓰는 일을 제외하며 왼손이 단독으로 하는 일이 없다. 양손을 쓰는 일도 자세히
역할을 나눠보면 오른 손이 동작이 많고 왼손은 보조 역할을 한다. 백지장을 들더라도
오른손이 조금 더 힘을 쓴다. 내 생활에서 왼손이 주도적으로 하는 일이 없나 곰곰히 생각한다.
하나 있었다. 돈세는 일. 지폐 뭉치를 오른 손에 들고 왼손으로 헤아린다.
분명히 오른손이 보조 역할이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돈을 그렇게 세어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없다.
5만원권이 나온 후 부터 돈다발을 들고 셀 일이 없어졌다. 기능은 있으나 쓸모가 없다.
이번에는 마우스를 왼손으로 잡아 보았다. 된다. 굴려서 포인트 잡는 정도의 일은 할 수 있다.
그래서 짝수달은 왼손, 홀수달은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쓰기로 했다.어깨 건강에 도움이 될 듯.
그리고 계속 궁리한다. 왼손에 시킬 일이 없을까?
내친김에 다리도 보았다. 걸음을 걸을 때 두다리를 함께쓴다..
앞으로가 구령에 먼저 나가는 것은 왼발이다. 그게 아무래도 오른쪽에 총을 메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왼다리가 앞에서 버텨줘야 총쏘기 편하다.
축구할 때 공을 차는 것은 오른발이지만, 닭싸움할 때 버티는 발은 왼발이다. 두 다리의 역할이
확실하고 왼쪽 다리가 큰 일을 한다. 버티는 역할이 중요하니 왼쪽다리가 오른쪽보다 살짝 굵다.
반면, 이 놈의 팔뚝은 오른 손을 그렇게 많이 쓰는데 별 차이가 없다. 버티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억지로 일을 시켜야겠다. 턱걸이나 벤치프레스 같은 운동을 해서라도 두 팔이 함께 일하도록
해야겠다. 그리고 왼손이 할일을 계속 찾아야겠다. 일단 양치질을 왼손으로 해 보기로 했다.
역시 어렵다. 일단 치솔이 각도를 못 잡는다. 아래 치아부터 딱아보려고 칫솔을 눕히는데,
손이 앞으로 나온다. 인중 아래 주먹이 있고, 치솔은 깊숙한 어금니가 아니라 목구멍 쪽을 향한다.
어쨌든 움직여보는데 리듬이 떨어진다. 계속 잇몸에 부딪치며 시원하게 나가지 않는다.
이번에는 위 치아를 딱는다. 왼쪽 윗니가 의외로 시원하다. 그동안 바깥쪽으로만 닦이던
어금니의 안쪽을 닦는 것이 수월하다. 기분이 좋다. 평소에 잘 닿지 않던 부분에 칫솔이 닿는 느낌.
위편 치아의 안쪽을 닦는데는 왼손의 각도가 나을수도 있겠다.
당분간 왼손으로 양치질을 해보기로 했다.
"아이를 낳으면 쌍권총을 사줘라"
좌뇌와 우뇌를 고르게 발달 시키기 위해서 양손잡이로 키우라는 선배들의 지침이었다.
야구 선수 경우에는 희소성의 잇점을 위해 왼손 잡이로 키워진 경우도 있다. 죄타 우투.
어떤 목적으로 가지고 노력하면 후천적으로 양손을 쓰는게 어렵지 않다.
평생 오른손만 쓰다가 갑자기 왼손이 하는 일이 없다 생각하고 시켜보니 양치질조차 어렵다.
그래서 독하게 마음 먹고 왼손을 써보기로 했다. 양치질부터 시작한다.
물론 숟가락질 같이 중요한 일은 아직 못시킨다. 일단 단순한 일, 다른 사람 눈에 거슬리지
않는 일부터 시작해 보겠다. 평생 과다하게 일한 오른손을 좀 쉬게 해야 한다.
연습해두면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바로 스위치가 가능하도록.
항상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