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책 읽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 지나)

by NIL

언제나 하나쯤은 있다.


『필경사 바틀비』/허먼 멜빌 지음/ 김 훈 옮김/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7. 2015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작가 ‘허먼 멜빌’의 생애는 그렇지 순탄하지 못했다. 모두가 경외하는 대작 『모비 딕』을 출간했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자녀 출생 이후 경제적 어려움은 더 심해졌고, 뉴욕으로 이사하여 세관에서 일했다. 문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몇 개의 단편을 연달아 발표했는데 그중 한 편이 『필경사 바틀비』다.


이 작품은 제국을 만들어가던 시절 월스트리트의 한 변호사 사무실이 배경이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변호사는 어떤 공익적 의무보다는 경제적 실속을 추구하는 인물이다.


그와 함께 일하는 네 명의 직원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대별 대표 선수다. 평생을 열심히 일했지만 이제는 술로 노여움을 달래고 있는 노년, 야심은 크지만 능력이 따라주지 않아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젊은이, 본인의 잠재력은 알지 못하고 주변의 기대를 먹고 자라는 소년까지.


‘바틀비’의 첫인상은 ‘딱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예의 바르고 누구도 어떻게 해 줄 수 없을 만큼 쓸쓸해 보이는 젊은이’ 였다. 착실하게 주어진 작업을 진행하던 그가 사흘만에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즉 "I would prefer not to"


며칠 뒤 바틀비가 필사한 서류의 대조 작업을 하려할 때 다시 한 번 그 반응이 나왔다.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사무실의 다른 직원들 모두 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변호사는 그의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선한 마음으로 그에게 접근하며 그의 저항의 원인을 알고 싶어했고 함께 일하기를 설득하려 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거부는 변호사에게 굴욕감을 줄 뿐이었다. 어떻게든 그가 일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고 다시 일하게 하기위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주변의 의견을 들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보상받고자 하지만 끝내 거부당했다.


주변 사람들이 평가하고 처분하면서 각자의 감정을 치유하려 할 때마다 ‘바틀비’는 더 외롭고 단절된 공간으로 들어간다. 일을 하지 않는 바틀비에게 유예 기간을 주는 것을 특혜라며 반발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사무실의 새 주인도 바틀비의 무단 주거를 용납하지 못했다. 조금은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었던 변호사가 구치소에 면회하고 음식물을 제공했지만 그것마저 거부하며 영면했다.


'바틀비'는 어떤 인물인가?

처음 "안 하는 편을 선택하겠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는 그일이 계약 범위를 벗어 나서 그런가 했다. 그렇지만 그 이후로 그가 어떤 일도 하지않고 심지어 사무실을 점거하고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진 후에는 모든게 혼란스러졌다. 엄청난 사건으로 상처받은 영혼이 아닐까 추측했다. 어쨌든 사무실에서 쫓겨나 구치소에 수감되고 거기서 굶어죽었다.


일을 하고 그 보상으로 먹을 것을 살 돈을 받는 메키니즘에서 일을 하지 않는 편을 선택했던 그 순간에 그는 이미 굶어 죽을 결심을 했을 것이다.


요즘 언론에서는 ‘자살’이라는 실제 행위를 ‘극단적 선택’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는 무슨 말인지 모를 기사도 본다. 삶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것은 ‘마지막 선택’이다.


그 선택을 위한 고독의 시간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은 소통을 원한다. 그 과정에서 계속 선택한다. 그런데 그 선택의 기준을 너무 쉽게 말한다. 경제적 이익, 사회적 평판, 동료 그룹 내의 권위 등등, 그리고 결과에 순위를 매기고 자랑하기를 반복한다. 누군가 상처를 가진 사람은 거기에 함께하지 못하며 삶을 바라보고 있다.


누군가의 불행을 목격하면 어느 정도의 선한 감정이 일어날 수 있다. 사무실의 보스로서 변호사는 바틀비의 불행에 대해 자신이 선의을 가지고 도우려했다고 계속 어필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바틀비가 우편국에서 죽은 사람의 편지를 분류하는 일을 했었다는 것을 밝히며 그때부터 이미 바틀비는 죽음의 나락에 있었다고 변명한다. 그를 이해하기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우리 사무실에 오기전부터 죽음을 생각했던 사람이다.


마지막 선택을 할 때까지 그가 어떤 순간 어느 공간에서 가장 힘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의 행동에 대해 모두 질문을 하기만 할 뿐, 그의 대답을 듣는 자는 없었다. 그냥 그가 바라보는 창밖을 같이 바라봐 주기만 했어도 그의 선택을 달라질 수 있었다.


거의 두 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러한 권력과 세대 구조는 계속 반복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경제적 이익이 모든 의사결정의 기준이다. 베이비 부머의 은퇴와 밀레니얼 세대의 담론을 만들며 가치관의 변화를 이야기하지만 누구도 “바틀비”와 같이 불운한 사람에게 공간을 내어주려 하지 않는다.


문득 돌아보면 우리 옆에 언제나 이런 친구 하나쯤은 있었다. 그것이 과거의 못된 친구 때문일 수도 있고, 너무 열심히 일해서 번아웃이 왔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수도 있고, 그냥 지하철에서 심한 욕을 들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누군가 자신을 작은 공간에 가두고 있다면 그와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 여유가 필요하다.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바틀비의 운명을

자본주의와 물질 만능 시대를 사는 인류 보편의 비극적 운명에 빗대어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라는 말로 이 작품을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