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투

책 읽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 지나)

by NIL

『외투』, 니콜라스 바실리예비치 고골 지음, 오 정석 옮김, ㈜미르북컴퍼니, 2021년


19세기 러시아 작가 ‘고골’의 작품에는 하급 관리들이 자주 등장한다. 본 작품 외에도 『코』,『감찰관』같은 작품도 관료 제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물론 짧은 기간 관리로 일했던 작가 자신의 경험도 바탕이 되었겠지만, 당대 러시아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서유럽에 비해 발전이 늦었던 러시아에 관리들의 등급과 승진 제도가 도입되면서, 그들에 대한 불만과 모순이 드러나는 시기였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비에치’는 가장 말단인 서기라는 직책으로 일하며 다른 일을 할 생각도 없고 승진을 시키려 해도 감당할 깜냥이 안 됐다. 그의 외투가 너무 낡아서 동료들에게 ‘내복’이라고 놀림받아도 새 외투를 장만할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극도의 내핍 생활 끝에 새로운 외투를 장만했다. 외로웠던 ‘아카키’의 생활에 새로운 동반자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새 외투에 들뜬 그는 생애 처음으로 오후 시간을 침대에서 뒹굴며 보내고 상사의 파티를 위한 야간 외출도 했지만 돌아오는 길에 외투를 빼앗기고 말았다. 외투를 잃고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서장을 찾아갔지만, 그는 관심이 없었다. 동료의 소개로 새로 승진한 유력 인사에게 부탁했지만, 그는 권위를 보여줄 뿐 도움을 주지 않았다. 결국, 불쌍한 ‘아카키’는 높은 열에 시달리다 비참한 생을 마무리했다.


그 후 페테르부르크에는 외투를 빼앗아가는 관리 옷차림의 유령에 대한 소문이 퍼졌다. 경찰도 잡지 못하는 유령의 정체는 ‘아카키’였고, 문제의 유력 인사 외투를 빼앗아간 후 그 유령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소심한 사람들은 도시의 변두리에 유령이 계속 나타난다고 말하고 다녔다.


이렇게 무기력한 주인공이 관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부모가 지역 내 관리들과 밀접한 관계였으리라 추측한다. 오랫동안 9급 관리로 일한 그가 보여주는 태도는 익숙하고 안전한 일에 애착하며 경제적 결핍을 감수하는 형태였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인 성공, 동료들과의 교류에는 관심이 없다. 가족에 대한 헌신이나 결혼에도 무감각할 듯하다. 주변 사람들은 그런 그를 무시하고 조롱하며 놀려댔다. 그래도 그는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나름 열심히 살았다. 간혹 그에게 기회를 주려는 상사나 연민을 느끼는 젊은 관리가 있었지만 그 호의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재봉사 같은 뒷골목의 인간들에게 관리로써의 권위를 부리며 산다.


그가 처음부터 새 코트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예전 그의 코트가 “내복”처럼 낡아서 더 이상 추위를 감당할 수 없었을 뿐이다. 재봉사는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려 했다. 생각보다 많은 상여금을 받아 좋은 옷감을 살 수 있었다. 결국은 그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새 코트를 갖게 되었다. 순진한 그는 주변의 칭찬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 생각하지 않고, 들뜬 기분으로 달콤한 환상을 품는다. 침대에서 뒹굴고 귀부인과의 밀회를 꿈꾸며 평소에 생각지 못한 욕망을 드러내지만 현실에선 바로 새 코트를 빼앗기고 말았다. 새 코트를 상상하며 오랫동안 지탱해 온 긴장을 늦춘 순간, 그는 죽음이라는 가장 큰 절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가 견지해 온 라이프스타일을 생각하면 새 코트가 없이도 사는 데 문제는 없다. 어차피 재수 없는 인생, 강도를 만나서 코트를 뺏겼다 하면 그만이다. 그가 죽은 원인도 추운 겨울에 돌아다녀 감기에 걸렸을 뿐이라 생각할 수 있다. 유력 이사가 그의 호소를 거절하는 것도 이미 익숙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동안 그의 말을 귀담아 들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까. 복권에 당첨된 사람이 큰돈을 감당 못 해 불행해지는 이야기를 우리는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유령의 등장은 이 작품을 급변화시킨다. 죽어서까지 외투에 대한 집착으로 다른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는다는 것은‘아키키’적인 행동이 아니다. 소심하고 무기력했던 그가 새 외투를 가졌던 하루 동안 얼마나 변화했는지 보여준다. 자신의 욕망에 눈뜨고, 존재를 인정받고, 부당한 결과에 분노하는 현대적 인간이 된 것이다. 그 후로 계속 출몰하는 유령들의 모습은 기존의 농노 중심의 집단 사회에서 근대화와 함께 도시로 진출하면서 욕망을 충족기 위해 노력하는 개인들의 등장을 의미한다.


‘고골’의 시대를 지나면서 돈에 대한 욕망은 더 커졌고, 개인 간의 갈등은 더 복잡해졌다. 군대와 관리들의 불합리한 조직 체계는 기업과 학교에까지 영향을 미치며 오히려 확대됐다. 그 안에서 개인은 조직의 톱니바퀴로 살지만, 참을 수 없는 무례함에 대한 분노와 공동체 가치의 상실 앞에 폭발하기도 한다. 그 폭발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고골’ 자신도 내면에 터뜨리지 못한 응어리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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