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책 읽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지나)

by NIL

한 번은 선택해야 한다.


『달과 6펜스』, 서미싯 몸 지음, 송 무 옮김, (주)민음사, 2000년


영국 작가 ‘서머싯 몸’은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의 생애에서 소재를 얻어 본 작품을 집필하고 1919년 발표했다. 죽은 후에 유명해진 화가의 생애를 작가 본인이 직접 겪은 내용과 그를 만났던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회고하는 방식으로 전개한다. 집필 당시 작가는 40대 중반의 나이로 전쟁 이후 변화하는 새로운 질서와 문화에 대한 시각을 반영하며 담담하게 예술과 인생에 대해 변화된 시각을 보여준다. 작가는 단순히 화가의 일대기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런던의 성실한 주식 중개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40세쯤 되던 어느 가을날, 가족과 직업으로 모두 버리고 그림을 그리겠다고 파리로 도망쳤다. 그 후 5년, 파리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곤궁한 생활에도 계속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동료 스트로브가 후원하며 중병에 걸린 그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 살려낸다. 처음에는 그를 혐오했던 스트로브 부인은 그에 대한 연민으로 모델이 되기도 하고 함께 생활하지만, 그의 외면에 자살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타히티 섬을 방문한 작가는 그의 흔적을 추적한다. 방황 끝에 도착한 곳에서 원주민 아내와 가족을 이루고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다 사망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여러 사람의 증언으로 기술한다. 말년에 한센병에 걸린 채 대작이 그려진 오두막을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라진 그를 후세의 사람들은 명망 있는 화가로 칭송한다.


어릴 때 화가가 되고 싶었던 스트릭랜드는 왜 주식 중개인이란 직업을 택했을까? 식민지 확대와 함께 성장하는 금융 시장이 중산층의 건실한 청년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유망한 직업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가 40쯤 되었을 때 대륙에 전쟁의 기운이 돌며 시장에서의 성공에 한계를 느꼈을 수도 있다. 거기에 문화계 인사들과 어울리며 상류층 놀이를 하는 아내와 두 자녀는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을 강화했다. 그런 불안을 완화하려고 시작한 그림 수업이 내면에 잠재된 예술혼 또는 탈출 충동을 자극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탈출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블란치 스트로브의 죽음은 파리를 탈출하여 미지의 세계로 두 번째 도피하게 했다. 그가 내면에 억압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는 동안 가족과 친구들은 희생해야 했다. 심지어 그에게 가장 호의적이었던 스트로브는 그의 만행 때문에 화가의 꿈을 접고 낙향하게 되었다.

작품에는 작가의 의학교 친구 ‘아브라함’의 일화도 등장한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풍광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의 행로를 다시 선택했다. 유명한 의사의 길에서 변방의 소시민으로 인생의 배경을 변화시켰지만, 인간 자체는 변하지 않았다. 타인의 시선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부족해 보이는 삶이지만 스스로 만족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

(중략)

그것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요구,

그리고 개인의 권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저마다 다를 것이다.」


‘서머싯 몸’ 자신도 의학교를 다니다가 진로를 변경하여 작가가 되었고, 전쟁 때는 전투에 참여하기보다는 정보 수집 활동을 하며 후방에 머물러 있었다. 한창 활동할 시기에 문단이나 전쟁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그도 계속 작가로 살아야 할지,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꽤 고민했을 것이다.

그래서 본 줄거리에서 벗어나 런던의 문화계와 예술에 대한 다양한 관점, 등장인물들의 과거사와 여성관까지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다. 다양한 이야기 중에는 분명 독자를 잡아끄는 인물이 있다. 그리고 그 인물과 공감하며 현재 우리의 인생과 연결된다.


처음의 선택은 먹고살 걱정 때문에 이루어졌다. 부모의 영향이 큰 경우도 있고, 정신없이 살다가 어느 순간이 오면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명예퇴직이 아니라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꿈이라면 다행이다.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겠는가. 다만 그 꿈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희생해야 하거나 지금까지 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면, 그 꿈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다양한 상담 기관이 있다. 여행하며 생각을 차분히 정리해 볼 수도 있다.

타히티의 원시성도 알렉산드리아의 풍광도 도시의 허위와 경쟁에 지친 현대인에게 위안이 되는 여행지가 된다. 그렇지만 영원히 도시를 떠날 수 없다. 우리에겐 와이파이와 아메리카노가 필요하다. 더구나 예술가들은 더욱 그렇다. 귀족들의 후원이 아니라 문화 예술 기금과 창작 지원 시스템을 버리고 혼자 살 수는 없다. 가진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선택이 더 어렵다. 불행한 화가‘폴 고갱’의 최후 또한 그렇게 행복하지는 못했다.


『달과 6펜스』는 달콤 씁쓸한 소재와 이야기로 기억되지만, 그 안에는 작가가 창조한 인물마다의 삶이 있다. 그리고 지금 선택의 순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묻고 있다. 후회하지 않겠는가. 당신이 생각하는 그 가치가 당신 가족과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생각해 보았는가. 불순한 화가 한 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와 얽힌 사람들, 각자가 자기 인생의 주인공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현대에 다시 입혀 본다. 한 번은 다른 것을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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