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책 읽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 지나)

by NIL

『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전 영애 옮김, (주)민음사, 1998년


누군가에게 ‘버러지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면 정말 심한 욕이다. 거기에 보태 ‘밥만 축내는’이라는 수식을 붙이면 죽으란 이야기다.


본 작품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의 처지가 그렇다. 어느 날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다. 이런 일을 당한다면 두 갈래 생각이 날 것이다. 하나는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밤에 잠자는 자세가 안 좋아서 허리가 아프거나 목이 잠겨 소리가 안 나오기만 해도 큰 걱정에 병원을 찾는 법인데, 몸뚱이 전체가 변했다니 웬만한 맨탈로는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다.


불쌍한 그레고르는 일하러 가야 한다고 몸을 괴롭힌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선 자신이 일해야만 한다. 가족들의 재촉에 몸을 추스르고 나가려 하지만 이미 변해버린 몸은 맘대로 되지 않는다. 정신이 내리는 명령을 벌레가 되어버린 몸은 수행할 수 없다. 몸뚱이를 끌고 다니며 가족과 소통을 시도하지만, 가족들은 역겨운 벌레의 활동이 부담스럽다.

아버지는 어느 날 갑충으로 변해버린 아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사업에 망한 이후로 가족들에 얹혀 지낸 5년 동안 자신도 힘들었는데, 아들도 같은 꼴이라 생각하니 죽도록 보기 싫다. 그동안 모아둔 용돈을 비상금으로 하고 은행에 사환 자리라도 구해 다시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온 가족이 뭔가 돈벌이를 해야 한다. 방을 하나 비워 하숙이라도 쳐야 파출부 일당이라도 줄 수 있다. 아들에게 연민을 보이는 아내와 딸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저놈을 가둬놓지 않으면 가족들이 돈을 벌 수 없다.


그레고르는 억울하다. 그가 출근하지 않자 집으로 찾아온 상점 지배인이나 하녀, 파출부와 하숙 신사들은 첫눈에 그를 벌레로 치부한다. 외부인들에게 혐오와 불쾌감을 뿐 아무런 긍정적 역할이 없다. 벌레로 변한 아들을 돌보고 싶었던 가족들도 외부인들의 따가운 시선에 위협을 느꼈다. 저놈 때문에 가족 전체가 사회의 지탄을 받고 돈을 못 벌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흉측한 현재의 외모에 의해 과거의 희생, 미래의 희망 모든 것이 부정당하고 있다.

가장 동정적이었던 여동생에 의해 무쓸모의 벌레로 규정되는 순간, 아주 작은 희망까지도 사라졌다. 자신의 생존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가족을 위해 죽어주는 길을 택했다. 자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가족들은 새로운 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미 보여줬다.


이 우화 같은 이야기를 읽은 후 며칠 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몸이 아프거나, 나이가 많거나, 외모가 변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버려지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이건 꿈이야 인식하면서 잠에서 깨어나기 싫었다. 그것이 현실이 되어 있을까 봐...... 인간이 벌레로 변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에서 밀려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항상 존재한다. 그것이 악몽의 원인이다.


개인이 처한 입장에 따라서는 그런 사람을 돌보는 가족들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할 수도 있다. 경제적 영향력과 신체 기능을 잃어가는 가족을 지켜보고 돌보는 일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그 부담 안에는 현재의 생활 문제도 있고, 나 자신도 저렇게 변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있다.


돈 벌어오는 기계에서 돈도 못 버는 벌레로, 믿고 의지하는 선배에서 잔소리꾼 꼰대로 인식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다른 사람을 지키는 모습에서 보호받는 존재로 변하는 것. 그것이 두려워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자기 검열을 한다. 그렇게 소외된 사람이 벌레로 여겨지는 것인지, 그들을 무시하고 냉소하고 폭력적으로 짓밟는 자들이 벌레가 되는 것인지, 모든 인간이 벌레가 되는 순간을 겪는 혼란의 시대다. 나만은 예외가 될 것이라는 어리석음도 있다. 흉측한 3등분 외모를 다른 사람에게 들키거나, 그들의 도움을 구걸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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