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시간 (가을에서 겨울지나)
『거미 여인의 키스』, 마누엘 푸익 지음, 송 병선 옮김, 민음사, 2000년
‘몰리나’라는 청년이 있다. 그의 몸은 남자이나 정신은 여자다.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한 죄로 8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그의 일탈에 가장 슬퍼한 어머니를 위해 빨리 감방을 나가고 싶다. 다른 수감자에게서 저항 조직의 정보를 빼내면 가석방을 해준다는 제안을 덥석 받았다. 그의 방으로 이감되고 처음 만났다.
‘발렌틴’은 생각보다 젊고 딴딴한 몸을 가진 녀석이다. 그동안 고문에 시달렸는지 몸은 상처투성이지만 투철한 이념으로 혁명을 꿈꾼다. 몰리나의 성향과 죄목을 아는지 무시한다. 아무래도 그를 포섭하기 위해선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다. 먹이를 잡기 위해 줄을 치고 기다리는 거미가 되기로 했다. 옛날에 엄마와 같이 본 ‘주말의 명화’ 중에서 표범 여인 이야기를 미끼로 던졌다. '발렌틴'이 반응한다.
몰리나의 영화 이야기가 잊고 있던 욕구를 깨운다. 조국과 사랑 사이에 갈등한 파리의 여배우가 주인공인 영화는 발렌틴 개인의 이야기를 끌어낸다. 사랑은 혁명에 방해가 된다 하면서도 가슴속에 간직한 여인이 있다. 거미줄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몰리나’는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먹었다. 나쁜 약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도 먹었다. 그럼에도 더 아픈 '발렌틴'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폈다. 소장과의 거래로 반입한 외부 음식은 ‘발렌틴’ 식욕을 돋운다. 신념의 사나이 ‘발렌틴’이 점점 변하고 있다. 더 맛있는 것을 먹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즐거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없는 숲 속의 오두막 같은 2인실 감방에서 그들의 사랑은 쪼끔은 행복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잠깐! 문제가 생겼다. ‘발렌틴’을 잡으려던 거미줄에 ’ 몰리나‘가 걸려 버렸다. 모든 것을 버리고 빨치산이 된 영화의 주인공 ‘발렌틴’을 운명적으로 사랑하게 된 ’ 몰리나‘. 드디어 육체관계로 까지 발전하다니.
가석방이 결정됐지만 좀비에 물린 ’ 발렌틴’을 두고 떠날 수 없다. 몰리나’는 사랑을 위한 희생을 결심한다. ‘발렌틴’의 혁명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그가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이 아깝지 않다, 가석방되었지만 ’ 발렌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그의 메시지를 동지들에게 전하려다 죽었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 발렌틴‘이 보는 환상이다. 드디어 거미 여인이 나온다. 모든 영화와 ’ 몰리나‘와 사랑하는 여인 ’ 마르타‘까지 마구 뒤섞여 혼란스럽다. 여자들에게 미안해하는 것 같다.
“내가 당신 마음속에 살아있고, 그래서 당신과 항상 함께 있다는 것. 그래서 당신은 절대로 홀로 있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죠 (중략) 우리 두 사람이 똑같이 생각한다면, 우린 함께 있게 될 거야. 비록 볼 수는 없어도 말이야.”
교도소에 오기 전 ’ 몰리나’라는 동성애자이고 ‘발렌틴’은 이성애자였지만 두 사람 모두 전정한 사랑으로 교감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유부남 웨이터에 대한 사랑도, 혁명 동지였던 옛 여자 친구도 그들에겐 이룰 수 없는 짝사랑이나 희망 사항이었다. 내면에 억압된 사랑이 오히려 교도소라는 제한된 환경에서 꽃을 피웠다, 다른 누구의 시선도 없는 가운데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가며 완성되었다. 특히, 이성애자인 ‘발렌틴’이 ‘몰리나’ 내면의 여성을 발견하고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 자체가 한 편의 영화다. 그것은 동성애가 아니라 인간애로 정의하고 싶다.
물론 ‘발렌틴’이 감옥에서 나온다면 사랑하는 여인 ‘마르타‘와 옛 동지들과 함께 새로운 혁명을 준비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위해 생명을 바친 ’ 몰리나‘를 영원히 잊어서는 안 된다.
아르헨티나 작가 ’ 마누엘 푸익‘의 작품 “거미 여인의 키스”는 형식이나 소재 모두 파격적인 작품이다. 주인공 두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환청처럼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거기에 여섯 편의 영화 이야기가 액자처럼 삽입되며 롤플레잉까지 하게 한다.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이며 독재 정권이 한창이던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동성애 소재라니. 파격 중에서도 파격이었다. 스페인어권에서 먼저 문제 작가로 낙인찍혔다.
이 작품이 나오고 50여 년이 흐른 현재, 문학 작품이나 영화에서 동성애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되었고,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억지로 끼워 넣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교도소에 있는 죄수의 자백을 받기 위해 다른 죄수(또는 위장 경찰)를 투입했는데 인간적으로 감화되어 한패가 되는 이야기 또한 석 달에 한 번은 나온다.
그렇지만 현실 세계에는 아직도 넘지 못한 한계와 편견이 허다하다. 아직도 사상의 자유를 외치며 체제에 도전하다 탄압받고, 매년 열리는 성 소수자들의 퍼레이드를 논쟁 거리 삼는다. 100분 토론에 나와서 서로 말도 안 되는지 얘기만 하는 인사들을 보면 두 인간을 한방에 쳐 놓고 설사하는 수프를 먹인 후, 합의될 때까지 못 나오게 하고 싶다. 하긴 그들도 봄날의 미세 먼지처럼 퍼져버린 사랑에 중독돼 버린다면 더 나은 세상이 될지도…….
“사랑하는 발렌틴,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거예요. 이 꿈은 짧지만 행복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