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L Jan 31. 2024

고향을 찾아왔다.

하늘 정원


   새벽부터 분주했다. 다행히 날씨는 쾌청하고 준비한 물건들이 하나 둘 현장에 도착했다. 백화점에서 못 구하는 것이 어디 있겠냐?  성원은 으쓱하며 호숫가로 다가갔다. 어젯밤 몰래 트럭들이 실어온 배가 조립되고 있었다. 김 부장이 수배해서 가져온 바지선이었다. 송안 호수에 나룻배나 관리용 모터 보트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탈 배는 없었다. 댐 건설로 조성되고 홍수 조절과 농업 용수로 관리되는 송안호는 낚시와 물놀이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유람선같은 큰 배는 없었다.


   강여사는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배를 타자고 했다. 마을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가서 그들이 두고 온 것을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이제 너무 늙어버린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시간이 될 수도 있다고. 

   김 부장은 아무것도 없는 바지선을 선택했다. 오늘 현장에서 조립하고 갑판에 벤치를 설치했다. 간단한 추억의 음식과 영상을 볼 수 있는 장치를 세팅했다. 남은 공간에서 더 많은 마을 사람들이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도록 최초의 취지대로 마을 잔치를 준비했다.


   김 부장이 배 주변을 돌아보며 하나씩 점검하는 사이. 어르신 한분을 모시고 중년 남자가 다가왔다.

 "그래서 다 된 거야. 승호야! 이번에는 제대로 한 거야?"

장난스러운 미소로 김 부장을 부르는 사람은 드림백화점  권 지철 회장이다. 성원은 처음 보는 회장에게 먼저 고객을 숙여 인사했다.

 "누가 명예회장님 모시고 마을로 내려갔으면 하는데. 차 타고 가지 않겠다고 하시니."

 "여기 민대리가 모시고 갈 겁니다."

 수행원의 부축을 받으며 드림 백화점의 권 수영 명예회장이 앞장 섰고, 성원이 옆을 따르며 길을 안내했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였지만 대기업 회장보다는 탁구동호회에 어울릴 것 같은 친근한 모습이었다. 


 "그냥 차 타고 가셔도 되는데요. 길이 좋아져서 마을 회관 앞에 주차장도 넓습니다."

수행원에게 한 이야기지만 명예 회장이 대답했다.

 "날씨가 좋아서. 아버지는 항상 고향에 대해 말씀하시면 날씨 얘기만 했어. 처음에는 우리나라 날씨가 다 그렇지. 거기만 그렇겠냐 그랬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지."

 "오늘 참 드물게 좋은 날씨입니다. 저도 여기 살기 좋은 동네라고 자신있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겨울에

   춥고 여름에 더운 것이 다른 지역보다 훨씬 확실한 동네인데요."

 "허허. 그게 우리 아버지 말씀인데. 자네 혹시 우리 아버지 자서전 봤나?"

 "아니요. 저 드림백화점 직원된지 한 달도 안 됐습니다. 창업 회장님을 알긴 하지만 자서전까지 볼 정도의

  관심은 아니었습니다.그냥 우리나라 위인전같은데서 보았죠. 재벌 열전 그런것도 있었구요"

 "그렇겠지.아버지 돌아가신지도 꽤 시간이 흘렀고 요즘 젊은이들에겐 그냥 역사속의 인물이겠지. 

  우리 아버지가 고향에 대한 기억은 날씨뿐이었던 이유는 아무것도 내세울게 없었기 때문이야. 고향에서 맛있게 먹은 것도 없고, 즐겁게 다닌 학교도 없었고, 등밀어준 친구도 없고 소년 시절에 도망치듯 떠난 고향이 무엇이 그렇게 애타게 그리운지. 그런데 떠오르는 기억은 날씨뿐.그마저도 조금 포장한 것이지. 가난한 농부의 자식이 무슨 대단한 추억이 있겠겠나. 근데도 그렇게 뭘 하고 싶어 하셨지. 자기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고향을 위해. 그향에 남은 사람들을 위해"


 "땅이 비옥하지도 않고, 산수가 화려하여 관광객이 오는 것도 아니고, 유난히 더운 날에는 그냥 더 일찍 일어나 소 먹이러 가고. 날씨는 마을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만들었지만 그것만으로 부자가 될 수 없어서 일찍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그래서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지만 변덕스러운 날씨와 부지런한 사람들만 생각난다고 말씀하시곤 했지요, 그것들을 직접 느껴보시려고 걸어가시는 겁니다."

 어느새 다가온 권지철 회장도 함께 걷고 있었다. 자신은 알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고향을 찾아오는 80세 할아버지의 마음은 그 아들에게도 흘렀다. 그동안 아버지 이름으로 만든 장학회며 향우회나 지자체를 통해 지원을 해 오긴 했지만 직접 느끼고 싶었던 것은 주민들의 환호가 아니라 아버지의 기억 속에 있는 바람 소리였다.

   

   명예 회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원은 일단 출세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과가 좋으면 그 목적이나 동기는 얼마든지 포장할 수 있다. 지나간 시간들조차 아름답게 변화한다. 결과가 좋으면 그 처음과 과정은 얼마든 창작해 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회장 일가의 향수를 달래는 행사에 백화점의 모든 조직과 인력을 동원했다. 오래전 마을을 떠난 창업자의 탁월한 포부와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신화로 만들고 있다.


  마을 회관에는 실제 수몰 전 계향리에 살았던 어르신들도 나와 계셨다. 강여사가 언급했던 너무 늙어버린 누군가 이리라 생각하며 명예 회장을 안내했다. 인사를 나누며 누구 아들의 아들이며, 누구네 사촌이고, 누구  아버지인지 서열을 정했다. 대부분이 권 씨인 이 동네 사람들에게 얼버무려 대답했다가는 부모님 욕먹기 딱 좋은 상황에서 명예 회장님은 정확하게 자기 자리를 찾았다. 인사를 나눈 노인들과 함께 선착장으로 향했다.


  바지선 앞에 선 권 지철 회장과 김 승호 부장도 옛 생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네가 기어코 저걸 가져왔구나."

 "기억하냐.내가 저 위에서 키타치며 노래하겠다고 했던 거"

 "당연히 기억하지. 88 올림픽 때 남한강에 비지선 띄우고 밴드 불러 파티하자고 했었잖아" 

 "88 올림픽이 아니라 월드컵 때지. 2002년 월드컵".

 "아니야. 88이야. 시차가 그렇게 큰데 내가 그걸 기억 못 하겠냐. 우리가 아주 젊을 때라고."

 "월드컵 때도 젊었었어. 시청 앞에서 방방 뛰어 다녔었는데. 지금도 젊긴 하지.스무 살 때부터 바지선에서

   놀 궁리를 했으니까.너한테 여러 번 말했을꺼야 나라에 이벤트 있을때마다."

 "언제나 내 대답은 똑같았지. 그렇게 공개적으로 놀면 재벌 3세 난봉꾼 이미지 생겨서 안된다.돈 줄테니

  해외에 가서 너 혼자 놀아라"

 "그걸 드디어 오늘 한다. 좀 있으면 밴드도 올 것이다."

   두 사람이 그렇게 추억을 나누는 사이. 마을 주민들이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보며 웅성거렸다. 김 부장이 오늘의 일정을 설명하고 주민들이 바지선에 올라 자리 잡자 배는 천천히 호수 가운데로 헤엄쳐 갔다. 갑판 한가운데 가장 안전하게 자리잡고 있던 명에 회장 일행 중 한 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쯤에 학교가 있었지. 배를 멈춰보시게. 여기가 우리 집이 있던 자리다"

노인의 말에 배가 멈추고, 사람들은 각자 기억하는 마을을 풍경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이 자리가 맞을겁니다. 우리 마을이 있었던 자리. 어르신 댁은 똥색 철대문이었는데."

 "똥색이 뭐냐 금색이지."  

비교적 젊은 층에서도 추억담이 나오기 시작하자, 김 부장이 대형 스크린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몇 해전 가뭄이 들어 호수에 잠긴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 찍어놓은 마을 모습입니다. "

스크린에 사진들이 떠오르기 사작했다. 물에 잠기기 전 허물었던 건물의 잔해, 사람들이 다니던 신작로와 다리 잔해들이 뻘에 묻혔지만 윤곽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어서 그 시절을 학교 졸업 사진과 마을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흑백 사진들을 보며 참석자들은 얼굴 하나하나를 더듬어 기억해 나갔다. 이어서 최근에 찍은 수중 촬영 사진까지. 비록 어두운 물속에 옅은 조명으로 찍은 사진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는 데는 충분한 윤곽을 보여주었다.영상을 반복해서 돌려도 주민들의 눈은 떨어지지 않고 조그만 추억이라도 찾으려 애썼다.


"아버지는 아주 작고 소박한 마을이었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꽤 큰 마을이었군." 

  명예회장이  중얼거리고 있는 순간. 화면에는 분명 그 똥색 대문이 띄어졌다. 녹슬고 뻘이 차있지만 그것이 똥색이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호수가 되어버린 마을에서 똥색이었는지 금색이었는지 확실치 않게 녹슨 문짝을 찾아낸 잠수부들이 대견했다. 엄마가 저녁 먹으라 부르며 나올 것 같은 모습이 있었다. 누구 집의 부뚜막 가마솥도, 물고기가 드나들 것 같은 자개장도 형체를 간직한 채 호수 안에 고스란히 가라앉아 있었다.


  마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들대로 추억에 잠겼고, 처음 보는 젊은이들은 어른들의 말씀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했다. 아버지가 말한 고향의 날씨를 확인하러 온 명예 회장처럼 거기 있는 모든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말씀을 확인하며 마을로 돌아왔다. 이젠 본격적인 마을 잔치가 준비되어 있었다. 백화점에 입점한 유명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이 푸드트럭을 몰고 나와 대형을 만들었다. 잔치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세계 유명 음식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어르신들도 막걸리를 나누며 호수 위에서 느낀 감상을 나누고 도시에서 불려온 자손, 친척들과 새삼 안부를 묻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웃고 마음을 통하는 모습이었다.


 분위기가 무르익는 모습을 보며 성원은 자신의 소감을 감추고 김 부장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정말 저도 모르는 것을 많이 준비하셨네요. 부장님의 진심이 느껴지네요.."

"그럼. 민대리는 모르지만 권 회장은 내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소원을 드디어 이루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

"근데, 한편으로는, 오너 일가의 행사에 백화점의 인력과 조직, 협력사를 이렇게 동원하는 것이 맞나 하는 의구심도 있습니다. 사적인 일에 너무 공적인 자원을 동원하는 것 아닌가 하는."

김 부장은 뭐 그런 질문이 있냐는 눈빛으로 성원을 바라보았다.


 "그 질문에는 내가 대답할게요."

  목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권지상 차장이었다. 언제 온 것일까. 질문에 대한 답보다 그의 출현이 반가웠다. 오늘 올지 모른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막상 마주 서고 보니 말문이 막혀 제대로 인사도 못했다. 

"우리가 골드를 인수하면서 가장 신경쓴 것이 향토 기업의 이미지였지. 우리나라의 모든 백화점이 대기업 집단 소속인데, 유일하게 지역을 지키고 선전하고 있던 그 전통을 가져오는 것. 그것을 그대로 흡수해서 빨리 지역 고객들의 마음속에 들어 갸는 방법을 찾아야 했어. 우리 회장님은 그런 분이지. 이것이 비즈니스에 필수적이기에 이 일을 하시는 거야. 할아버지의 인연을 백화점의 자산으로 만드는 것. 우리는 그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겁니다."


  말을 하며 걷는 권차장을 따라 어느새 행사장을 벗어나 호숫가를 걷는 성원도 무심코 아버지를 생각했다.

기억의 공간을 되살리는 것.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하는 것. 그 안에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아버지가 만든 공간이 다시 떠 올랐다. 갑자기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어졌다.



이전 14화 10월이 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