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L Jan 24. 2024

10월이 왔다.

하늘 정원

   10월이다.  분주한 9월은 지나가고 수확의 10월이다. 

하늘은 높고 맑았다. 가슴에 손을 대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 바람 소리까지 달라진 느낌이었다. 하늘 정원의 풍경도 바람의 속도와 방향도 미세하게 바뀌었다. 담배를 들어 연기의 방향을 측정했다.어제 어떤 방향이었는지 기억못하니 변화를 모른다. 오늘의 방향을 기억하고 내일 확인해야지. 생으로 타들어 가는 담배만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문화센터 운영팀 박팀장은 생각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였다. 김 부장보다 선배인듯 깍듯하게 존대했다. 문화센터를 30년이상 운영한 노하우와 강사 네트워크를 자랑했다. 한편으론 소극적으로 보였다. 그동안 보아온 드림백화점 사람들과 조금 다른 유형이었다. 위축된 느낌이었다. 권팀장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 했던 송안점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했다. 일단 실장급 인원 파견부터 유명 강사들의 우선 배치와 오픈 특강, 기존 강좌 할인 행사등 초반 기세 몰이를 위한 계획에 전혀 이의가 없었다.너무 수월하다 싶을 정도로 수락하여 불안하기도 했다. 성원은 회의 내용을 복기하고 문서로 만들어 확실하게 조이기로  마음먹었다.


   드림백화점의 일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문제가 생기면 관련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회의를 한다. 그리고 각자 할 일을 나누고 헤어진다. 너무 당연하고 쉬운 방법이다. 핵심은 관련자를 정하고 모으는 방법이다.

정 상무에게 숙제를 받고 한 사람씩 찾아다녔다. 김 부장과  권팀장, 문화센터 직원들, 시스템 담당자, 그런 식으로 계속했다면 본사 담당 직원들을 만나고 팀장까지 연결되는데 또 하루가 지났겠지만 김 부장이 전화와 메시지로 그들을 모아주니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회의를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를 알 수 있었다. 함께 일했던 경험으로 직관적인 결정을 한다. 경험이 직관을 만든다. 유명한 강사의 영향력에 대한 공감대가 있고, 그에 맞는 강의실 배정과 시간 계획까지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감이 생겼다. 어제의 걱정과 우울로부터 벗어났다. 고맙게도.

  

  "드림백화점에서 여자들이 생존하는 법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어느 틈에 권새록 팀장이 뒤에 서 있었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눈만 껌벅이고 있을 때, 그녀가 다시 말했다.

  "이 조직에서 민 대리가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민해봤냐는 질문이에요"

   

   가만히 호흡을 가다듬고 권팀장을 향했다. 강렬한 에너지를 뿜는 그녀의 눈빛을 살짝 피하며 아래를 쳐다봤다. 명품 스니커즈가 역시 새것처럼  빛났다.유니폼으로 착각할 정도로 잘 손질된 그녀의 흰색 셔츠와 감색 재킷, 살짝 흔들리는 팔찌. 이것이 나의 가까운 미래일까.

  "저도 승진히고, 팀장 되고, 바로 권팀장님이 저의 미래 아닌가요."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팀장이 되고 팀장으로 20년을 지내면 아까 만난 박팀장님이 되는 거죠."

  "와 대단해요. 어떻게 20년 동안 팀장을 해요. 그래서 문화센터에 대해선 도사가 되셨군요"  

  "대단하긴 하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턴 꼭 그렇지만도 않을 걸요. 한해 한해 경력이 쌓이는 게 아니라 그냥

   같은 일이 반복되는 느낌, 일을 하는데 어려움 없으면서 도전도 없고 발전도 없는 안전한 자리"

  "잘 모르겠네요. 전 아직 팀장이 되는 것도 힘들어 보여서요."

  "우리 모범생. 민대리님. 그래요. 천천히  생각해 봐요. 백화점이 재밌는 곳이에요. 문화센터, 디자인, 고객

  관리같이 전문성이 필요한 자리에 여성 팀장이 많아요. 근데 거기서 끝이에요. 임원이 되고 본부장, 사장이

  되는 것은 필드에서 뛰던 남자들. 지들끼리 술먹던 애들이죠. 그래서 20년 후을 미리 그려보라는 거에요"


   그녀는 휘리릭 가버렸다. 질문은 성원에게 했지만 그것은 모든 여성 직원의고민이었다. 전문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한자리에 20년 동안 머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 팀을 거쳐간 수많은 직원들은 박팀장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vip 케어팀의 직원들은 권팀장의 빠른 승진에 어떤 불안을 느끼고 있을까. 박팀장이 20년 동안 그 자리에 머물 줄 알았다면 젊었던 시절에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딱 무엇이 맘에  걸리는지 말할 수 없지만 앞으로 남은 20년 이상의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성원은 권팀장의  질문을  다시  곱씹어 보았다. 20년 후에 진정  행복할  수  있을까. 지난달까지  같이  일하던  골드 직원의  60%이상이  백화점을  떠났다. 그들의 미래는 달라졌다. 단순히  일이  힘들어져서, 또는 부당한 인사 제도에  대한  항의로 그만둔 것일까. 그들도  분명히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선택했을 텐데.

   

   문화센터에도 갈 겸 오랜만에 매장에 나갔다. 평일이라 매장은 한산했다. 점심 시간이 지난 식당가에는

업체별로 2~3 테이블만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문화센터앞에는 아이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 엄마들이 몇몇 있고, 대형 강의실에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다. 데스크 직원도  없다. 강의실 뒷정리하러 갔겠지.

    한 층씩 내려올 때마다 매장 공사의 기운이 강해졌다. 일정표상으로는 앞으로 10일이내에 모든 공사를

끝내야한다. 야간 공사가 기본이지만, 일부 매장은 칸막이를 치고 낮에도 공사를했다. 멀리어디서 기둥을 갈아대는 소리가 들렸다. 몇 층에서 하는지 모르지만 백화점 전체가 울렸다.

   

   지하 식품부에 내려오니 좀 편안해졌다. 골드 시절에 리모델링을 했으므로 개편 공사에서 제외되었다. 매장 내  데코와 사인만 교체할 계획이다.고객 숫자도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고객들의 대화 중에는 드림 백화점으로 바뀌는 것에 대한 기대보다는 물건 값 오른것에 대한 걱정이 많다. 고객들의 대화를 따라 푸드코트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매장 공사 기간에도 영업을 한다는 결정에서 2주가  지났다.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앞으로 10일간 하룻밤에 한 층씩 완성될 것이며, 기존 매장의  층간 이동과 신규 브랜드 입점 공사가 끝나고 상품이 채워지면 마법처럼 새로운 아침을 보게 된다. 약간 기대되기도 하는데.


"오늘도 늦냐?"

핸드폰 너머에서  강여사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엘리베이터 안이에요. 살살 말해요"

"별건 아니고 오늘  저녁  뭐  먹을까 하고."

"새삼. 왜. 정상 퇴근해도 9시인데 내가 언제  집에서  저녁 먹었다고."

"그래도 문화센터 잘해결했나 궁금하기도 하고. 피곤할텐데 일찍 오라고."

강여사가 이상했다. 성원의  회사 일을 궁금해한 적이 없었는데 일부러 전화까지 해서 물어보다니.

"음. 어쨌든 기획서 만들려면 오늘도 야근할 거야. 낼 아침에 봐요. 일찍 주무시고."

   간단한 통화였지만 엄마가  따로 할 말이  있었던 것은 있었나 궁금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모든 것을 차단하고 문화센터 회원 모집 계획에만 집중했다. 정상무가 찾아도 김 부장이 불러도 못 들은 척했다. 오전에 했던 회의 내용에 살을 붙이고 일정과 예산을 추가했다. 사장님이 방문하는 날, 문화센터 로비에 너무 많은 수강신청자가 몰려 난장판이 될 것을 상상하니 미리 흐뭇해졌다. 다시 읽어보고 정상무가 민감한 여백과 인쇄 배율까지 확인하고 프린트했다. 확실히 정상무 스타일이 깔끔하긴 했다. 깔끔하게 야근 없이 8시에 퇴근했다. 


 "그 20년 동안 어땠는지. 박팀장이란 사람 이야기도 들어봤니?"

낮에 권팀장의 대화 내용을 말하자 강여사가 반문했다.

"아니. 근데 회의때  보면 뭔가 수동적이고, 일에 지친 느낌이었어. 또 그거냐 하는 표정"

"그건 네  생각이고 엄마 생각은 다른데  나중에  그분  이야기를 들어봐."

"그래서 엄마  생각은  뭔데. 임원도  못되고  팀장으로  20년  지내면  미칠  것  같지 않아.

  매년 반복되는 일과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에 대한 후배들의 원망. 뭐 그런 거."


  엄마는 식탁 위의 와인잔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서 물어보라는 거야.그분에게 지난  20년이 어땠는지 들어보라고."

 "아직. 그 정도 친하진 않고."

 "개인적인 소회말고 그분이 살았던 시대를 물어보야야 한다. 지난 20년동안 드림백화점 점포 스무개 넘게

   늘었는데 거기에  문화센터 없는 점포 없지. 그리고 그 모든 점포의 문화 센터가 머두 다른 위치에 다른

   형태로 있을것 아니니, 그런데도 그분이 매년 같은 일을 반복한 것처럼 보여.흔히 하는말 있지 팀장이라고

   다 같은 팀장이냐. 그분에게 팀장이란 직책은 아무 의미도 없었을 거야. 맨처음 문화센터를 만난 그날이나

   지금 송안의 문화센터를 만난 날이나 일을 하려는 마음은 똑 같을 테니까. 너희 아빠는 농부였고 엄마는

   선생님이었는데 왜 결혼했는지 아니?. 다음 시대를 위해 뭔가를  키우는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야." 

   엄마가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한마디  덧 붙였다.

  

 "너희들이 살아갈 시대를 먼저 생각해 봐. 그분이 권팀장 나이에 어떤 팀장이었나 아무도 모를 걸"

     엄마가 말하는 시대라는  말이  재미있었다. 세대가 아니고 시대. 지나간 시대와 다른 시대가 오는건가.

   문화센터  오픈 특강 중 하나인 '미래 대 예측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꼭 들어 보기로 했다. 

   

    나의 시대, 나의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는지.

    여기 남는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원하는 커리어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엄마가 말한 낡은 단어 '개척자'에 대해 생각했다.

이전 13화 생각이 복잡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