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BMW 520을 샀다. 벌써 6년 정도는 된 것 같다. 잘 타고 다니다가 몇 개월 전부터 자동차 키의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경고등이 뜨기 시작했었다.
처음 경고등을 봤을 때는 매우 긴장했었다. 신경이 쓰여서 바로 검색도 해봤었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고, 며칠 지나자 나는 그 이슈를 기억에서 흘려보냈었다. 주 1회 정도 차를 몰기 때문에 뇌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 같다.
매주 주말에 차를 운전할 때가 되면, 한 번씩 경고등을 보게 되었다. 점점 나는 익숙해져 갔다. 경고등이 켜지는 것이 전혀 긴장되지 않았다. 마치, 시동을 켜면 안전벨트를 착용하라는 경고등이 켜지는 것과 같이 인지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아내는 운전을 나보다 자주 한다. 같이 주말에 차를 타고 갈 때면, 배터리 교체 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넌지시 기억을 일깨워주었다.
"그래, 교체해야지. 이따가 집에 들어가서 해보자. ㅇㅋ?"
그런데, 한번 미루기 시작한 일은 도무지 진전이 나가지를 않았다. 기억하기로 이후로도 3번 정도 더 시도했던 것 같은데, 매번 다른 이유로 도중에 그만두게 되었었다.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유튜브 영상을 찾았으나 따라 하는 도중 무언가가 뜻대로 안 되어 그만둔 적도 있고, 필요한 드라이버를 찾다가 포기하거나... 그랬던 것 같다.
마치, 너무 하기 귀찮은 일인데, 마지못해 하면서도 이 짜증 나는 작업을 중도에 멈춰줄 수 있는 핑계를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오늘 드디어 배터리 교체 작업을 끝마쳤다. 며칠 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유튜브 영상을 집중해서 몇 번씩 반복해가며 따라해봤다. 처음에는 도대체 '작은 홈'을 찾을 수 없었는데, 여러 번 시도 끝에 자동차 키의 뒷면 배터리를 빼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정말 기뻤다.
이게 뭐라고.
어쨌든 배터리 모델명을 확인하는데 성공했다. 바로 쿠팡으로 주문했고, 그 배터리는 퇴근하고 오니 드디어 도착해 있었다.
다시 유튜브 영상을 켰다. 3일 전에 봤었기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었다. 영상을 보며 어렵지 않게 홈을 찾고, 뒷면 덮개를 해제하고 배터리를 빼내는 것까지 능숙하게 해냈다. 이제는 누군가의 자동차키를 대신 해제해 줄 수 도 있겠다는 뜻 모를 자신감이 올라왔다.
배터리 교체를 마친 나는 지하 주차장에 있는 차에 가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옷을 입고 있는데, 아내가 헛웃음을 지으며 물어본다.
"그건 귀찮지 않아?"
평소에 이런 류의 일을 무지 귀찮아하는 내 성향을 잘 아는 아내이기에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하 주차장에 내려가서 자동차키 테스트를 해본다는 사실이 꽤 신선했던 것 같았다.
"아니? 이건 별로 귀찮은 느낌이 안 드는데?"
별생각 없이 대답하고 나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생각에 잠겼다. 왜 이건 귀찮지 않다고 느껴졌을까?
제 3자 입장에서 살펴보면 되게 이상할 것 같았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집 안에서 차 키를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일은 너무 간단해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차 키를 눌러보는 일은 일면 생각하기로는 훨씬 귀찮은 행동으로 보였을 것 같았다. 동일한 모델의 배터리로 정확하게 교체를 마쳤는데, 작동을 안 하면 그게 이상한거 아닌가? 충분히 그렇게 보일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성적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후자가 더 편하게 느껴졌던 것일까?
그 답이 나는 '익숙함'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더 에너지가 많이 드는 동작일지라도, 익숙한 행동이 더 편했던 것이다. 유튜브 영상의 내용은 '익숙하지 않은 정보'를 배우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불편했던게 아닐까.
그렇게 서툴렀던 배터리 교체 조차도 5번째의 시도에서는 매우 수월하게 수행해 내는 나를 발견했듯이.
나는 '재능이 없어서...'라는 개념을 오랫동안 믿고 있었다. 최근에야 이런 오랜 선입견이 깨어지고 있다. 이렇게 가까운 일상생활을 통해서 깨우쳐 가고 있다. 무엇이건 처음 배우는 것은 어설프고 짜증 나도록 서툴다. 그것을 섣불리 '재능이 없어서...'라는 생각으로 물들여 버리면 안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많이 하면 익숙해진다. 그리고, 익숙해지면 잘하게 된다. 남들은 무언가를 잘하는 나를 보고, 그것에 재능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