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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저런생각

작은 성취감들에 대해서

by sajagogumi

집 앞에 나가서 가볍게 뛰었다. 10분 정도를 뛰었더니, 온몸에 열이 후끈후끈 올라왔다. 혈액이 급박하게 돌기 시작하면서 내 심장을 아프게 때려 왔다. 가벼운 통증과 함께 숨이 차는 반면, 무언가 모를 충족감이 밀려왔다. 드디어 무엇으로 채워야 할 지 몰랐던 공허함이 채워지는 느낌이였다.


요즘 나는 무엇으로 채워야 할 지 모를 이상 야릇한 공허함을 겪고 있다. 이 감정을 공허함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달리 표현할 만한 어휘가 떠오르지 않는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면서 이 현상은 점점 강해져갔다. 그래서, 꿈 대신 목표라고 할만한 몇 가지를 정했었지만, 결말의 시기가 늦어지면서 나의 의지도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목표라고 해봐야 특이한 것은 아니다. 건강, 돈, 가족, 일 이런 것들에 대한 조금 구체적인 계획 들일 뿐이다. 이 카테고리들을 정할 때에는 많은 깨달음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했었지만, 지나고 나서 여러 글들을 읽어보다 보니,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더라.


다만,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세부적인 사항들이 조금씩 다를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일단 영어로 대화 할 수 있는 능력일 키우고 싶었다. 이 부분이 내 커리어에서 참으로 많은 발목을 잡아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알면서도 극복하기가 참으로 어려운 카테고리였다.


영어를 다시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한 시점이 벌써 2014년이니까 10년 전이다. 그 당시 새로운 집으로 이사하기 위해서 이삿짐을 다 싸서 보내놓고, 카페에 앉아서 아내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뒷 자석의 남녀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는데, 남자는 영어로 말하고, 여자는 일본어로 말하고 있었다. 서로 각자의 언어를 이해하고,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난 이 장면이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그만큼 강렬했나 보다.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나도 저렇게 대화해보고 싶다! 딱,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여러번의 시도를 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나는 간단한 문장 정도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한 건 아니다. 누가 그랬더라.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난 아직 꺾이지 않았다.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 대한 실망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이런 글을 적으며 되새김질 할 때마다 후회와 자신에 대한 실망 같은 감정 들이 되살아 난다. 서두에 적었던 것처럼 목표가 희미해짐에 따른 공허함 같은 감정들이 나의 감정을 채워가는 것도 싫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50이 가까워져 오는 나이에 토익 시험을 보기로 결정했다. 여태껏 대화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었지만,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목표치를 정하고, 무언가를 끝냈다. 라는 충족감을 얻고 싶었다. 그래, 내가 필요한 것은 성취감이다. 가슴을 가득 채우는 성공으로 인한 충족감이다.


지난 10년간 직장일을 하며, 나만의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어서 성공하기 위한 생각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러다가 그게 희미해질 때 즈음 퀀트투자에 흥미를 느껴 이것으로 성공하기 위해 노력했었다. 코로나의 지난 3년은 어떻게 지나갔었나. 희미하다. 그래, 성공으로 향하던 나의 열정은 그렇게 흔하디 흔한 스토리로 희미해져 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작은 성취감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작은 성취감들이 모여서, 나의 원래 목적에 가는 여정을 다시 시작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그 길로 가기 위한 기나긴 징검다리들을 만들기로 했다. 이미 나이든, 스펙이든, 커리어든, 열정이건 간에 정점에 닿기 위한 원웨이 티켓은 놓쳐 버렸으니까.


지금와서 그닥 후회가 되지는 않는다. 나는 잘 살고 있다. 가족을 이루었고, 다들 건강하다. 큰 돈을 번 것은 아니지만, 주말에 외식하고, 아이들 학원 보내는데 부족하지 않을 정도는 번다. 내가 원했던 정점의 성공을 위해서는 어쩌면 지금 누리는 모든 행운의 산물들을 포기해야 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의 모든 우연이 겹쳐서 만들어준 삶을.


다만, 채워지지 않는 그 무엇. 그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무언가를 다시 시작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일단, 영어와 건강이다. 작년 2023년은 허리디스크와 다리저림으로 고통 받던 한해였다. 이제 겨우 살짝 뛸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올해 아들이 중학교에 입한한다. 공부를 곧잘 하고, 아내도 가르치던 직업이라 집이 점점 홈스쿨로 변해가고 있다. 마침 잘 되었다. 나도 편승하기로 했다. 오전에 중학교 듣기 시험 문제를 같이 풀었다. 총 20문제를 풀었는데, 쉽지 않았다. 틀린 문제에 대해서는 딕테이션을 같이 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이런 작업들이 너무 하기 싫었었는데, 어찌된 일일까. 꽤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영어를 공부하니 머리에 충족감이 채워졌다. 나가서 뛰고 오니, 가슴에 충족감이 채워졌다.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면, 어떤 사업을 해야 할까 고민하던 뇌에서 다른 충족감들이 기분좋게 채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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