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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 Sep 26. 2024

직업의 부재는 곧 나의 부재

반복되는 실패들로 인한 직업의 부재는 나의 부재로 이어졌다

늘 무언가를 했었지만 늘 결과가 없다시피 했다. 무언가를 하기 위한 시도가 많았던 만큼 실패도 많았다. 박사학위 과정에 진학하기 위해 지원했지만 불합격했고, 생계를 위해 북 디자인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했지만 일이 거의 없었고, 대학교 교수님들의 일을 함께 해보고 싶어서 모교 교수님들을 상대로 홍보 메일을 보내고 직접 전단지도 돌려봤지만 일을 얻지는 못했다. 그렇게 진학도 실패하고, 북 디자인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일을 구하는 것도 어렵고, 결정적으로는 내 하나뿐인 노트북까지 망가져 버리자 내 전문분야였던 디자인 분야를 아예 떠나버리게 되었다. 그러고는 일주일을 방에 누워 쉬다가 일어나서 학습지 교사가 되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칠 수 있어서 생각해 낸 길이었다. 봄에 학습지 회사에 입사해 방문 교사가 되어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가을에 그 일을 정리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좋겠단 생각에 일을 찾아봤지만 구하지는 못했고, 어느 법률사무소에서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지는 못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떠나게 되었다.

보통은 학교 도서관을 매일 오가며 디자인 일과 구직활동을 했지만, 나에게 반려견 나루가 생긴 이후부터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게 되었다. 오빠로부터 같이 카페를 운영해 보자고 하는 말이 나왔고 나는 그 일을 미리 준비할 생각에서 디저트류를 만들어 보기로, 당시 유행하고 있던 스콘과 구움 과자 마들렌 그리고 휘낭시에를 만들었다. 그러다가 오빠와 같이 카페를 운영하기로 했던 말이 없던 일이 되었고, 나는 내가 만든 구움 과자를 판매하기로 했다. 해서 엄마를 통해 주변 지인들께 조금씩 판매를 했고, 주요 판매 창구인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했지만 스마트 스토어를 통해서는 주문이 한 건도 들어오지 않은 채 표류 상태가 되었다. 그런 상황 중에 경제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강아지 사료 판매를 해보기로 했다. 사업자등록을 하려는데 동일 주소지에서 두 개 이상의 사업자 등록을 할 수 없다고 해서 구움 과자를 판매하는 스마트 스토어는 정리를 하게 되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반려견 사료 판매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하고 운영하고는 있지만 한 달 순수익이 만 원 이하의 성과로 수입이 아주 미미한 상태이고 “나는 거의 쉬고 있다.” 해서 또 나는 뭐라도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홈베이킹을 주제로 해서 블로그 운영을 해보기로 했지만 저품질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매번 새로운 시작이 필요했다. 나의 일이었던 북 디자인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출판사를 상대로 홍보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도 매번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첫 직장이었던 출판사에서의 작업 결과들이 있었지만 너무 오래전 작업들이라서 요즘 디자인과는 확연히 달랐고 그것으로는 포트폴리오로의 활용이 어렵게 되었다. 해서 요즘 트렌드에 맞추어서 표지 디자인을 새롭게 여러 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한 번 일을 만나게 되면 후속 작업이 따라오기도 했지만 대게는 오랜 단절을 겪은 후 드문드문 일을 만나게 되었다. 그렇게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며 끊김이 잦았고, 북 디자인 프리랜서 디자이너로는 돈벌이가 되지 않으니 다른 직업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또다시 디자인 일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들이 반복되었다. 그렇다 보니 디자인이라는 한 가지 일에서도 종종 다시 새롭게 시작해야 했고 그럴 때마다 매번 심적 부담을 안고 일을 해야 했다.

디자인이 아닌 다른 일들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시작은 나를 자극하기도 했지만 늘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 일에 대한 정보 수집이 필요했고 전혀 알지 못하거나 경험이 없었던 일들이었던 만큼 정보 수집 단계에서부터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에도 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 구움 과자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에서는 좋아하지도 않고 먹어본 적도 없는 마들렌을 만들기 위해 혼자서 연구와 실험을 수차례 거쳐야 했다. 학습지 교사가 되어서 아이들을 만났을 때는 각 과목마다의 교재 특성을 파악해야 했고 아이들마다 다른 학습 상태를 파악해 맞춤형으로 가르침을 해야 했는데 그 일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그 일을 익히려면 1년은 되어야 한다고 했고 감사하게도 나는 한 달 정도 되어서 일이 습득이 되었다. 하지만 처음 수업에 나갔을 때는 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이었던 만큼 두려움이 매우 컸다. 반려견 사료를 판매하는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했을 때는 스토어에 상품을 등록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랐고 첫 주문이 들어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도 있었다. 보통 한 달이면 첫 주문이 들어온다고 하는 내용을 책에서 봤는데 다행히 내 경우도 그랬다. 이렇게 항상 시작은 간단치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새로운 일을 파악하여 도전해야 하기 때문에 정신적 에너지가 필요했고 시작에 대한 심적 부담감이 컸다.


나는 나의 전문분야이건 다른 분야이건 시작은 있으나 정착이 어려웠다. 나의 전문분야가 있었음에도 왜 내가 가졌던 한 직업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워 다른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을까. 본래 나는 디자인을 전공했고 2002년부터 2018년까지 17년 동안 오로지 그 분야에서만 공부하고 일했다. 다른 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이 한 길만 알고 걸어왔는데 디자인 분야에서 떠나고부터는 다른 새로운 직업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녔다. 내 전공이었던 디자인 분야에서 이렇게 저렇게 최선을 다해봤지만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길을 떠났었고, 그 뒤로부터 처음 경험해 보는 직업들을 내 직업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것도 매번 결과가 없다시피 했고 성과는 너무나 미미했다. 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자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했고, 또다시 디자인으로 돌아가 보기도 했고, 다시 또 다른 일을 찾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한 곳에 정착이 어려웠다.


반복되는 실패나 일의 부진함으로 인해 나는 종종 쉬어야 했다. 하는 일이 없이 오랜 기간을 쉼으로 지낸다는 것은 나에게 참 익숙하면서도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쉼은 재충전의 시간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계속되는 기나긴 쉼은 나의 부재로 이어졌다. 아니, 그래도 나는 항상 뭐라도 했었는데. 항상 정착이 어렵고 결과가 없이 오랜 정체기를 지내야 했던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일의 성사 후 그다음 일을 만나기까지 오랜 단절을 경험하거나, 내가 시도했던 어떤 일의 실패 후 오랜 정체기를 지낸다는 것은 서서히 분명하게 나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위협했다. 그것은 속임수에 빠져들게 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었다. 오래 지속되었던 정체기 속의 나는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 삶의 목적도 잃어버리게 되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의 나의 하루하루는 굉장히 무료했고, 내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오랜 정체기라는 상황 앞에 무력감이 들기도 했고 점차 내가 지워지는 것 같았다. 쉼이란 내게 익숙한 것이면서도 늘 반갑지 않았다. 그렇게 쉼이라는 상황은 자연스럽게 서서히 나를 잃어버리도록 만들었다. 반복되는 정체기 속에 나는 나를 잃어버린 채 살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게는 내가 누구인지 제대로 말할 수 없었던 시간이 길었다. 본래 나는 나를 북 디자인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소개할 수 있었는데 일을 맡는 적이 거의 없다시피 긴 단절 속에 드문드문 일을 했었으니까 나를 북 디자인 프리랜서 디자이너라고 시원히 말할 수 없었다거나, 나를 종종 다른 일로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랜 쉼 속에서 나를 말할 수 없는 시간도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의 문제는 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었다. 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언가 의미 있는 일에 임할 때, 그리고 나의 시간을 그것에 쏟고 나의 능력을 사용할 때 그것은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나의 일이 되었다. 따라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여러 가지가 될 수 있고 매번 바뀔 수도 있고 그것이 없을 수도 있었다. 직업은 곧 나를 말해주었고 직업이 없을 때는 내가 없어졌다. 직업의 부재는 나의 부재가 되었다. 나의 부재 속에서 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하고 무료함, 무력감, 무의미를 경험하게 되었다.


나는 왜 그렇게, 직업의 부재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게 되거나 내가 없이 살았던 시간이 길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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