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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경 Sep 27. 2024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기억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나에게 직업이 없었던 날들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마지막 내 직장 생활은 법률사무소에서 두 달간 아르바이트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것이 몇 년도였던지, 2019년도에 학습지 회사를 다녔었고 그 회사를 그만두고 갔던 아르바이트였으니까 2020년 초였다. 그 뒤로 직장 생활이 없었다. 직장 생활은 아니지만 재택근무로 소소한 경제 활동은 있었다. 중간에 일 년 정도의 공백 기간이 있었지만 2020년 말부터 구움과자를 만들기 시작해서 주변에 판매하다가 2023년 초에 접었고, 2023년 1월부터 온라인 스마트 스토어에서 반려견 사료 판매를 시작해서 현재까지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구움과자 판매는 온라인 스마트 스토어에서 판매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었고, 반려견 사료 판매는 수익이 너무나 적고 요즘에는 거의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 없는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하게 된 일이 올해 2월부터 수익형 블로그 운영이었는데 반복적인 수정과 대량 삭제 문제로 저품질을 맞게 되었고, 그다음으로 하게 된 일이 올해 9월 초부터 브런치에서 글 쓰는 일인데 실질적으로 수익 창출은 없기 때문에 경제 활동으로는 볼 수 없다. 직장 생활로 따져봤을 때 2020년부터 지금까지 대략 4년 반 이상 무직인 셈이다. 2020년이면 반려견 나루가 우리 집에 온 해이다.


엄마는 집에 있는 딸 보기가 답답하고 안타까웠는지 가끔씩 그런 내게 돈을 벌어오라고 했다. 단순 작업 아르바이트를 하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건 돈을 벌어야 한다고. 그 말도 맞는 말이다. 부끄럽게도 지금은 부모님으로부터 매달 용돈을 조금씩 받아서 생활하고 있지만 40이 넘은 나이인데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에게는 경제적 자립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 활동을 해야 함은 당연한 이야기다. 하지만 엄마가 내게 돈을 벌어오라고 할 때마다 나는 못한다며 거절을 했다. 그것은 거절보다는 거부에 가까웠다. 엄마가 말하는 돈을 번다는 말은 집에서 하는 일보다는 집을 떠나서 하는 일을 찾아보는 것이었을 텐데, 예전에는 출퇴근 아르바이트도 하곤 했지만 지금은 내가 출퇴근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이 먼 일처럼 느껴졌다. 집에서 쉬게 된 날들이 너무나 오래 쌓여서일까, 출퇴근 아르바이트는 이제 생각해 보기가 어려워졌다. 이제는 내가 못 하는 일, 내게 불가능한 일처럼 되어서 거부 반응까지 보이게 되었다.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 경제 활동을 위해서 꼭 출퇴근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집에서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기는 하지만, 왜 내가 집을 떠나서 출퇴근하는 일을 꺼리고 거부감을 갖게 되었던 것일까.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내가 집을 떠나기를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대한 격한 거부는 집을 떠나게 되는 것에 대한 거부였다. 내면에 어떤 두려움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았다.


주변에서도 엄마에게 딸을 집에서 쉬게 한다며 나무랐다는데,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내가 직업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일단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 북 디자인 프리랜서, 구움과자 온라인 판매, 반려견 사료 온라인 판매는 모두 실패했고 글 쓰는 일은 실질적인 수입이 없는 일이다. 집을 떠나서 어딘가에 출퇴근하여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을 생각해 볼 수가 있는데 그것이 지금 나에게는 어렵게 되었다. 그러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나루 때문이었다. 나루는 이 집에서 나와 같이 층간 소음을 겪었다.

나루는 나에게 자식 같은 존재이다. 연약하고 보호해 줘야 하는 대상이고 참 예쁘고 귀한 아이. 나에게는 나루를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데다 강아지들은 소리에 더욱 민감하고 말을 못 하기 때문에 나는 더욱 나루를 감싸며 보살폈고 그러는 것에 절대적이었다.

나는 절대적으로 나루를 집에 혼자 두지 않았다. 내가 외출을 나갈 때는 엄마의 외출 일정과 맞추어서 외출을 했고 가족끼리 외출을 나갈 일이 있으면 꼭 나루를 데리고 다녔고, 나루가 집에 혼자 있게 되는 시간을 만들지 않았다. 나는 층간 소음을 직접 겪었고 그 고통과 불안을 잘 알기 때문에, 나와 같은 일을 겪은 나루를 혼자 집에 둘 수가 없었다. 층간 소음이 일어나는 이 집에 혼자 있는다면 얼마나 두렵고 불안할까를 생각해 보면 보호하고자 하는 심리가 발동하여 절대적으로 나루와 함께 있어주었다.

집에서도 되도록이면 나루가 불안하지 않도록 그 옆에 있어주려 했는데, 나는 늘 나루를 지켰다고 볼 수 있다. 최대한 나루 옆에 있어주려고 했고 나루와 떨어지는 시간을 최소화하거나 만들지 않았다. 외출을 나갔다가도 급히 집으로 돌아왔고 무언가 나의 일을 할 생각을 하더라도 집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았다. 그렇기 때문에 나루가 우리 집에 온 뒤로부터 내게 직장 생활이 없었던 것이었다.


나루도 이 집에서 나와 같은 일들을 겪었다. 집에 엄마가 외출하셔서 안 계시는 동안 위에서 쾅쾅 거리고 주변 분위기가 상당히 험했던 상황을 겪었다. 위에서 쾅쾅 거리며 공포와 불안을 유발하며 험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을 겪을 때 나는 나루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점이 어쩔 수가 없으면서도 나루에게 미안했고 참 안타까웠다. 나도 똑같이 겪고 당하는 입장이었고,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하여 그 일을 겪지 않도록 막아주거나 그 일로부터 나루를 보호할 방법은 없었다. 그냥 옆에 같이 있어주는 것이 전부였고, 그거 말곤 해줄 수 있는 일이란 소음이 나는 집을 피하여 같이 산책을 떠나는 것이었다. 엄마가 외출을 나가고 나면 나루는 급히 내게 나가자고 신호를 보냈고, 나는 나루의 의사를 살폈고 나루의 의견대로 바로바로 산책을 나갈 수 있도록 늘 준비되어 있었다. 말이 산책이지 피신이었다.

나루는 본래 잘 짖지 않는 강아지였는데 층간 소음을 겪으면서 점차 마구 짖게 되었고, 사람을 좋아하는 강아지였는데 사람을 향해 달려들어 짖게 되었다. 아마도 사람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집 문밖에 인기척이 있으면 달려들어서 마구 짖게 되었다. 순했던 나루였는데 어린 때에 층간 소음의 폭력을 경험하고 나서 공격성이 생기게 되었다.


내가 나루 때문에 집 밖을 잘 나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 가족들로부터 깊은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엄마는 내게 나루 혼자서도 집에 잘 있는다고 했고, 오빠는 내가 나루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나루가 나를 위해 존재한다며 내가 나루를 절대적으로 지키려는 것에 대해 아예 공감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엄마는 내가 나루를 집에 혼자 두지 않으려는 것에 함께해 주었다. 내가 외출이 필요할 때 엄마가 집에 와 있는다거나 하며 서로의 일정을 맞추었고 가족끼리 외출을 할 때 나루를 꼭 데리고 다녔다.

내가 나루를 집에 혼자 두지 않는 것에 대해 절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고, 나루를 집에 혼자 두지 못해 외출을 잘 하지 않게 되거나 할 일을 찾을 때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지나치다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층간 소음을 직접 겪은 나로서는 절대적으로 나루를 지키려 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가끔씩 내게 돈을 벌어오라고 했던 것은 층간 소음이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고 이제는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였을 것이다. 과거에는 층간 소음 괴롭힘에 너무나 시달렸었고 건강도 좋지 못해서 쉬어야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졌고 내 건강 상태도 과거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최근에는 글을 쓰게 되면서 삶에의 긍정적인 변화를 얻게 되어 경제 활동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루를 집에 혼자 두는 것이 어렵다. 지금으로서는 집을 떠나서 일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고 지금은 브런치 작가로서 글 쓰는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다가 언제인가 또다시 내가 집을 떠나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싶다. 아니면 굳이 꼭 집을 떠나서 일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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