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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Dec 11. 2017

살아가다


쓸모 없는 것에 청춘을 내어주고 있습니다. 생계를 위해 매번 모든 것에 경계랄 것을 한다지만 또 다시 난 내가 왜 살아가는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 동력이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던 꿈일 때가 있고, 퇴근하는 길 버스 창가틈에서 맡는 바람 냄새일 때가 있고, 우연히 듣는 노래 가사 한 줄일 때가 있습니다. 구덩이를 하나씩 파내, 그곳에 무언가를 묻고 쑤셔넣은 채 어딘가로 달아나며 바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문득 돌아보면, 삶 여기저기에 있는 모든 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방향에 맞춰 각자 다른 박자로 움직이는 것 같았습니다. 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들은 어딘가에 스러져 뭉개졌겠지만 비교적 잘 쫓아온 것들은 내가 멈췄을 때 본격적으로 나를 뒤흔듭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가. 너는 왜 사는가. 한번씩 흔들린 난 대체 이 물음을 어떻게 처리해야할 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매번 적응하지 못해 당황스럽습니다. 살아간다는 게, 살아낸다는 게 무엇일까요. 나이를 먹으면 알 수 있을까 싶어도 지하철에서 봤던 늙은 남자의 미간이 그다지 평온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노년이 되어서도 미간에 저런주름을, 굳이 따지자면 생계의 가닥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건지 생각했습니다. 그 늙은 남자도 자기를 뒤쫓았던 여러가지 것을 봤을까, 몇 개는 구덩이에 묻고 몇 개는 어깨에 들쳐매고 몇 개는 짓밟아 으깨면서 살아온 걸까 궁리했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잘 빚어 놓은 것 같은 그간의 주름을, 그 삶의 증거처럼 새겨놓은 건 아닐까. 삶을 안다는 게 삶에 익숙해지는 건 아닐 수도 있나봅니다. 무언가를 안다는 게 평온해지는 걸 의미하는 것도 아닌가 봅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아는 게 아닐 수도 있나봅니다. 그래서 난 나를 쫓아온 것들의 물음이 매번 낯설고 무섭습니다. 쓸모 없다고 생각했지만, 반드시 떠올라 불편합니다. 난 왜 쓸모없는 것들의 물음에 흔들리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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