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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Dec 22. 2017

오늘은 금요일,

늘 조심하며 산다지만 또 다시 생각이란 걸 합니다. 차라리 즐거움이란 감정을 모르고 살았으면 어떨까 생각한 적 있습니다. 그럼 슬프거나 아파도 그런 줄 모르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감정은 양면적인 것이 아니고 그보다 더 복잡미묘한 것이라 느끼지만 가끔 너무 힘들때면 그것을 무심히 두 가지로 나눠버립니다. 난 지금 행복한가 아닌가, 난 지금 기쁜가 슬픈가.
 이런 것들은 외면하면 됩니다. 속 안이 텅텅 빈 채 바닥에서 몇번이나 튕겨지는 고무볼처럼 어떤 자극이 와도 관심 없는 듯 재기발랄하게 튀어다니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사회에서 뒤쳐지지 않는 경쟁력이 되기도 하고, 겉으로나마 타인과 대화가 되니 잃는 것만 있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삶을, 모든 것을 경계합니다. 또 다시 생각에 붙잡히지 않겠다, 또 다시 무언갈 마주보려 하지 않겠다. 탱탱볼처럼, 고무처럼 열심히 튕기고, 앞으로 나가기만 하며 살겠다고. 고무볼이 튕기면서 무엇을 뭉개고 있는지 보지는 않겠다고. 성공한 적 몇 없지만 또 다시 말도 안 되는 다짐을 합니다.
 어차피 기준 없는 삶, 타인과 하나 되지 못할 삶에서 난 내가 만들어놓은 그늘 아래로 숨기도 하고 그늘을 걷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언제나 사람은 때론 나쁘고 때론 좋은 것이니 나쁜 것은 외면하고 좋은 것에 취해 살면 그뿐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사람이고 그게 바로 연약함이니 그리고 그것이 결국 가여움이니 결국 모든 생각의 마지막엔 애틋함을 느끼며 마무리합니다. 생물에 대한 연민 없이 살 수 없는 것이 삶이라면 그것 또한 또 하나의 방패막이처럼 용이하게 사용해 봅니다. 그렇게 하루를, 한 달을, 남은 날들을 살아갈 용기를 만듭니다.
 그럼에도 난 문 하나를 나설 때마다 다시금 탱탱볼처럼 튀어나갈 준비로 무장해야합니다. 완벽한 준비는 아닐지라도 타인과 비교해 크게 부족함은 없을 것이라 믿습니다. 기준은 없습니다. 그저 여럿의 무리가 손짓하는 곳을 보고 그 곳에 마치 내 손이 먼저 가 있던 것처럼 행동하면 됩니다. 천연덕스럽지만 세련되게 해야합니다. 난 세련되지 않지만, 그렇다면 내가 틀린 것이니 교정되어야 합니다. 교정. 잘못된 것이 고쳐집니다. 난 고쳐지고 깎이고 다듬어집니다. 많이 아프지만 모양은 보기에 예쁩니다. 예쁘다는 말이 이리도 슬퍼질 수 있는 말인지 되짚습니다. 오늘은 금요일, 아직 살지 않은 주말이 또 다시 다가왔다는 것 따위에 바보같이 즐거워하며 반복되는 생의 주기를 살아냅니다. 오늘은 금요일, 즐거움같은 감정을 모르고 살았으면 어떠했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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