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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pr 16. 2018

잘자, 푼푼

잘자, 모두!



잘자푼푼을 읽었다. 애기가 추천해준 만화였는데 중간에 시간을 한참 끌고서야 다 읽게 됐다. 자꾸만 핑계들이 많아져 미루다가 다시 주행했지만 시간 차를 두고 본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
보는 내내 사실 힘들었다. 괴롭고 싫은 건 아닌데 보기 어려웠다. 애기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왜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만화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대사가 '잘자 푼푼' 이었다. 푼푼이 겪는 하루는 너무 시끄러웠다. 사람도 많고 소리도 많았다. 여리고 작은 푼푼은 계속 무언가와 마주하며 커갔다. 부모님의 부족함, 사랑을 주는 것에 서툴렀던 엄마, 처음으로 사랑한 아이에 대한 공포와 경외감같은 것외에도 푼푼이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순간은 많았다. 푼푼은 잘 잘 수 있을까, 내내 생각했다. 하루 끝에 잘자, 푼푼 이란 말이 나오면 안도했다. 잘 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푼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아이러니했다. 생각을 깊게 하는 듯 하다가도 섹스나 하길 바라고(그렇다고 의미없진 않다. 모든 건.)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할만큼 마음을 열던 사람도 또 다른 타인을 외로움을 달래기 위한 이용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이런 아이러니가 내 모습에도 있다는 걸 오래 전부터 인지해 와서 익숙했지만 거북했다. 전부 낱낱이 파헤치는 사람들만 등장하니, 여러 인물이, 나라는 한 사람의 여러 날 동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나누는 대사도, 언젠가 내가 했던 생각들과 느꼈던 감정들을 조각조각 모아 퍼즐을 맞추어 더 멋진 문장으로 다듬은 느낌이었다. 무서웠다. 더 읽다간 부끄러움은 그렇다 쳐도 한동안 현실세계의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도 잠시 했다. 내가 그런 감성조차 뛰어넘을만큼 강인해졌나. 아니, 뻔뻔해졌나. 한편으론 안도했고 한편으론 두려웠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을 캡쳐해 모았다. 푼푼의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만났던 남자아이와 나눈 대환데, 내가 가장 부끄러워진 장면이기도 했다. 나는 많이 컸다고 자부한 지점이 '자신감'이었다. 난 어릴 때, 굉장히 소심하고 여려서 남들 눈치를 많이 봤다. 사람들 시선이 제일 두려웠고 누구든 나를 어떻게 볼지가 가장 걱정됐다. 예쁘게 보여야 한다고, 참하고 순한 아이로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어른들의 시선이 그랬다. 날 낱낱이 파악하고 있을 것 같은 그들의 눈빛, 난 작고 어린데 크고 똑똑한 어른들은 내 순수함의 일면도 영악하게 해석해버릴 것 같은 그들의 편협함을 경계했다. 어렸을 적부터 자유로운 생각보단 방어적인 것만 끌어안고 산 것 같아 지금은 많이 아쉽다.
오히려 어른이 된 지금은 그런 자유를 조금 얻었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이 생겨서였다. 나도 생각이 자랐고 무언가를 배웠고 타인의 자아에 굴하지 않을 내실한 내면이 있다고, 내 할 일을 성실히 해낼 수 있는 끈기와 버티는 강단도 있다고 확신한 순간부터 자신감이 싹텄다. 그대로 행했다. 그렇게 사니, 편해졌다. 사람이 두렵지 않았다. 행복은, 잘 모르겠다.
아직 미지수다. 저 대화 장면을 보고 왜 부끄러워졌는지는 완벽히 캐낼 수 없다. 그냥, 그렇게 살고 있음에도 그렇게 산다고 해서 크게 행복하지는 않다는 게 부끄러운 지점인걸까. 푼푼 속 인물들처럼, 하루는 밥이나 먹자며 배떼기 두드리고, 하루는 섹스나 진창 하자 하고 몸을 만지고 또 하루는 그런 게 너무 허무해 내내 울다가 또 다시 다 그런 거지 뭐, 하며 뻔뻔해지는 게 부끄러운가. 난 뭐 그렇게 대단한 확신이나 자신감을 키웠다고 자부했나, 부끄러웠던가.
마음이 말랑거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이리저리 나도 모르게 흘러가면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누군가가 나를 자신의 외로움이나 이기심을 위해 이용하진 않을까, 그 후에 그것을 내가 견뎌낼 자신은 또 있나. 말랑거릴 수 없다. 푼푼을 끝까지 보고 생각하면 난 말랑하게 될 것 같다고. 모두를 또 이해하려고 들 것 같고, 모두의 장점을 굳이 찾아내 긁어 모아준 뒤 그들을 안전하게 곁에 둘 변명거리에 속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그 믿음은 온전히 내 것인가. 그래서 힘들었다. 지금와서 감정을 들춰 보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난. 약했다 난. 약한 것을 인정하며 사는 게, 어쩌면 자신감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어른이 돼도, 난 나를 찾고, 하루 하루 나를 보고, 내가 느낄 행복을 맹신하고 싶어한다. 누구나 그럴 수 있다.
아이코가 기억에 남는다. 가장 멋진 인물이다. 푼푼이 왜 끝내 잊지 못하고 그리워 했는지도 알 것 같다. 나도 아이코에게 있는 그런 단단함을 키우고 싶다. 조금은 더 천천히 뻔뻔해지고 싶다.
아이코도 푼푼도 잘 잤으면 좋겠다. 나도 딸기도. 잘자,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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