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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pr 17. 2018

그곳이 좋았다고


엄마가 입던 드레스가 탐났다. 밑단이 크게 퍼져서 바람에 날리면 작은 집이 생겼다. 그림자가 둥글게 지면 그 안에 들어가 앉았다. 웅크리고 몸을 말면 모두가 조용했다. 피부에 느껴지는 치마의 질감만 소리를 만들었다. 말로 할 수 없는 소리였다.

난 그날도 엄마의 치맛단 속에 들어가 몸을 안았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빠르게 움직였다. 모두 달랐다. 누군가 엄마의 치마를 건드렸다. 너무나 큰 소리였다. 치마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난 둥근 그림자가 깨지지 않게 치맛단을 조금 당겼다. 몸이 크지 않길 바랐다. 머리를 숙여 팔 사이에 넣었다. 이렇게 엄마와, 그림자와 침묵을 섞어 먹으며 눈을 뜨지 않길 바랐다.

바람이 크게 불어 그림자가 넓어졌다. 빛이 들어왔다. 난 여전히 웅크렸는데 네가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림자를 구긴 작은 발자국 두 개가 내 앞에 찍혔다. 치맛단을 들춘 네가 날 보며 웃었다. 난 울음을 터뜨렸다. 모두가 조용했다.

그 날, 내게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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