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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pr 25. 2018

벚꽃이 지니 해가 비춥니다.

세상은 잘 접힌 도화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졸린 것은 괜찮나요. 자도, 자도 잠이 깨질 않는다고 하셨죠. 병이 아닌가 걱정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오래도록 잠을 자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곳은 눈을 감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코와 귀도 막아 모든 감각을 내쫓고 싶기도 합니다.

어제는 맞고 있는 아이를 보았습니다. 한 여자가 문방구 오락기 앞에 서성이던 아이의 머리통을 잡아끌곤, 자판기에 사정없이 짓찧었습니다. 아이가 쥔 오백원짜리 동전은 햇빛을 받아 총명하게 빛났습니다. 그걸 쥔 아이의 손은 너무 작았습니다. 이곳은 크고 작고의 문제를 가늠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힘을 쓰는 곳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 어떤 곳이 이곳과 다를까요. 눈에 보이는 크기에도 무감한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예민해질 수 있을까요.

늙은 아비의 손을 회초리로 내리치는 남자도 있습니다. 남자는 힘이 셉니다. 늙은 아비는 몸집이 큽니다. 늘어진 살들이 물결처럼 얼룩덜룩 제 크기를 자랑합니다. 늙은이의 손은 금세 붉어져 식은 밥을 주억거립니다. 남자는 침을 한 번 퉤 뱉고 드러누워 잠에 빠집니다.

외면하고 싶은가요. 눈을 감고 잠이나 흐드러지게 자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요. 강요하지 않습니다. 나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그래봤자 인간인데요. 날씨만 할까요.

이곳과는 무관하게 이곳의 날씨는 좋습니다. 어쩌면 날씨는 도화지에 새겨진 그림이고 그곳에서 움직이는 우리는 그림을 바라보는 뒤통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장에서 일하는 누군가의 손가락이 잘려 피가 튑니다. 비명을 내기 전에 자신의 손가락에서 핀 핏물이 꽃봉오리처럼 만개하는 것을 감탄하며 바라봅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손을 잡고 엉거주춤 병원으로 향합니다. 공장 문이 열립니다. 바깥엔 해가 비추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옵니다. 그들은 도화지를 바라봅니다. 그들의 모습은 구멍난 뒤통수로 그려집니다. 가장 무감한 건 신이 만들었다던 날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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