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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Jun 11. 2018

기분

잘못 기억되는 것들은 많아요. 무엇때문에. 기분때문에. 할아버지가 말해요. 한평생을 살아도 그깟 감정하나 때문에 많은 것은 생기를 잃고 틀어질 수도 있다. 마음은 그만큼 쓸모 없고 하찮은 것이지만 그것 하나 때문에 또 살게도 되지. 우리가 얼마나 조무래기같니. 저 위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작은 생물, 약한 게 아니란다. 우린 절대, 인간은 악한 모습은 있지만 약한 모습은 없지. 연민일뿐이다. 스스로를 연민하다보면 약해보일뿐이야. 언젠가 이렇게 사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죽어있다면 얼마나 좋겠니. 생각도 감정도 없는 무의 상태로 사라져버린다면, 그게 나의 가장 소박하고 거대한 꿈이란다. 사라지는 것. 머리카락 한 올도, 침 한 방울도 남김 없이 모조리 멸하는 것. 남아있는 것들이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조차 사라지는 것. 없다는 건 그런 거 아니겠니.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 바라는 것도, 알 수 없는 것도 없어서 어떤 감정이든 느낄 수 없어지는 것. 난 지금 살아있는 상태에서 그런 것이 행복이 아닐까, 느껴본단다. 찰나의 기쁨을 느껴봤자 금세 또 억울해지고 약한 척 하게 되는 게 마음인데, 이 땅 위의 질서에서 행복을 꿈꾸면 뭐하겠니.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좋은 생물과 적극적으로 자기위해서 정치를 하면 안 되는데. 그게 이 땅위의 무식하고 자명한 질서지. 그것만이 인간은 아니에요. 그래, 하지만 그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어디있니. 잊고 싶은 기억은 모두 그것에서 만들어진단다. 그러니 어차피 두서없이 움직일 것들에 바보처럼 웃고싶진 않단다. 그걸 알면서도 또 다시 웃고 울고 화내고 사랑하는 것을 반복하다가, 진짜로 행복한 무의 상태로 돌아간다면, 바보같았던 기억도 그런대로 괜찮을 수 있을런지. 그건 사라진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겠지. 슬퍼요. 지금 슬퍼해도 넌 또 다시 웃고 밥을 먹고 오줌을 누고 질펀하게 살 거란다. 그깟 마음쯤이야, 평생 목을 매고 살 필요 없는 사소한 것이잖니. 그래도 슬퍼요. 몇십년을 살아도, 눈물은 마르지 않잖아요. 포인트처럼, 쓰면 사라지는 것들이라면 얼마나 좋아요. 평생 충전하지 않고 쓰고만 살텐데요. 자신을 연민하기위해 우는 것을, 대단하다고 보니. 자기가 자기한테 건네는 위로일뿐인 걸. 그런 마음들이야 그냥, 형체 없는 마음인걸.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거라고, 믿는다. 행복한가요. 놀아나지 않을 뿐이란다. 약한 게 아니라, 악한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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