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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Jun 19. 2018

초침 소리가 쌓이면


무료함이 바닥날 땐 이야기를 들려줄게. 휴대폰을 쥐고 불빛이 되길 기다렸지만 휴대폰은 휴대 이상의 의미는 없었어. 아홉 번 째 봉지를 뜯고 바닥난 무료함을 씹었어. 과자는 눅눅해졌어도 도무지 무슨 맛인지를 몰라 또 다시 버린 내 천 이백원. 그쯤이야 쌓인다 해도 만이천원 십이만원 백이십만원. 그렇게 되니. 먹으면 사라지는 것에 쌓여서 사라지는 것을 투자했어. 결국 남는 것은 뭐가 뭔지 몰라 갈수록 무료함만 더해지는 구나 싶었어. 자고 일어났더니 겹겹이 쌓인 초침의 소리가 내 발끝 언저리에 묻었다. 한 번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여자는 그에 맞춰 다리를 절고 허리를 펴지 못했지. 쌓인다는게, 돈처럼, 무료함처럼, 약만 넣는다면 언제든 시계는 관람차처럼 잘만 돌아가. 천천히, 묵묵히, 바닥난 무료함을 긁어대면서 반복해. 휴대전화가 울렸다. 자세히 보니, 또 다시 20일이 됐어. 죽은 사람도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 더 죽고, 더 더 죽게끔. 혼자이고 싶은 때, 무료한 이야기를 들려줄게. 더 더 죽어가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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