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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ug 08. 2018

그림자 놀이

그림자를 넘어서면 또 다른 그림자가 생긴다

그림자놀이


그림자가 찢어진 사람이었다. 자주 모양이 바뀌어 그것을 찢어진 그림자라고 말했다. 함께 걸으면 그런 것이 좋았다. 그를 잡을 수 있던 건 머무르는 힘이 약해서였다. 그림자가 분명치 않아서 똑바로 볼 수 있어서였다. 

넌 사람이니, 사람이 아니니. 이곳에 있니 없니. 

괘념치 말라는 말에 구멍 난 머리통을 긁었다. 

내 그림자를 가져가. 구멍 난 네 뒤통수를 채워. 

그림자 놀이를 했다. 뭉툭하게 마디가 잘린 손가락으로 그림자를 찢는 시늉을 했다. 잘근, 잘근, 잘근, 잘근. 

어떻게 괘념치 않을 수 있겠니. 난 뒤통수가 없는 것이고, 넌 그림자가 없는 것인데. 옆 사람과 붙지 않게 내 곁에 붙어. 누군가와 섞이면 정말 달아날지도 모르잖아.
사라지는 것이 무서워서 네 뒤통수를 차갑게 두지마. 그림자는 원래도 없었고 사라져도 없던 게 되는 거야.
찢어진 그림자라도, 아주 작아서 보이지 않게 돼도 그대로, 그래 그런 모양으로 있어 줄 수 있니.
네 뒤통수를 채울 때까진.
난 머리가 없어도 잘 살아왔어. 다리로, 팔로, 입으로, 눈으로. 열심히 죽어가도록. 내 것으로. 그렇게 말야.
내가 네 곁에 붙으면 네 그림자까지 찢어버릴지도 몰라.
나름대로 즐거워.  

해가 비췄다. 어둠도 자리했다. 우린 그 의식에 동참했다. 찢어진 그림자를 볼 엄두가 나질 않아 앞으로 걸었다. 뒤통수가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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