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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Oct 11. 2016

열세 번째 잔 - 시선 의식, 판단

상대를 면접관처럼 나를 또 면접관처럼

우리는 늘 평가를 받으며 산다.

키가 작다 크다, 얼굴이 예쁘다 안 예쁘다, 날씬하네 뚱뚱하네.

사실대로 말하자면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저런 타인의 평가, 판단, 시선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시선을 읽어내려는 연습을 거의 본능적으로 하며 살아왔다. 상황적인 원인도 있었고 나 스스로도 워낙에 유약한지라 위험할지도 모를 것들을 아무런 검증없이 무턱대고 받아들일 순 없었다.


그래서 경계해야했다. 상대를 겪어보지도 않고 판단하기 바빴고 말도 섞어보지 않고 이분법적인 잣대를 마음 속에서 들이밀기도 했다. 기준은 철저하게 내 느낌따라. 이유없이 내 느낌이 끌리면 내 사람, 느낌이 딱히 끌리지 않으면 내 바운더리에 들어올 수 없는 사람. 싫고 좋고의 판단을 했다기보다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 관심 없는 사람. 이렇게 두 가지로 자연스레 나뉘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난 타인의 시선과 심리가 중요했다. 내 느낌으로 그것들을 판단하고 친해질지 말지 결정해야했으니까.


그런데 부작용은 내 느낌은 기준이 없다는 것이었다. 타인이 나를 헤칠 사람인지, 내게 도움이 될 사람인지 그건 겪어봐야 알고 적어도 말이라도 섞어봐야 안다. 내가 외모나 인상으로 평가받는 건 정말 기분 상해하면서 반대로 나도 타인을 첫인상으로만 판단하고 있었다. 아마 틀이 많다고 하는 게 맞겠다.


타인은 항상 내게 면접관이었다. 내 모습의 채점표는 항상 상대의 손에. 친해지고 싶은 사람에겐 잘 보이기위해 애썼고, 느낌 따라 무관심해진 사람에겐 심각할 정도로 무심했다. 오히려 잘 못 보이든 잘 보이든 아무 상관 없어졌다. 삭막한 인간관계가 됐다.


어찌보면 굉장히 이기적인 모습이었다. 기준도 없는 내 느낌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잘보이기위해 애쓰다가 관심이 떨어지면 무서울만큼 시선을 거두어가버리는 것.


누군가는 내가 자기애가 높아서 그렇거나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것 둘 중 하나일거라고 했다. 생각을 줄이고 도덕적인 판단을 내려놓으라고 말이다. 사람은 모두 나처럼 연약하고 실수를 하니까.


그렇지만 생각해보면 난 내가 관심 있는 것엔 애정 없는척, 차가운 척 괜한 자존심을 부리진 않는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내가 만저 만지고, 내가 먼저 예뻐한다. 관심 없는 사람에게 쓸데없는 감정 표현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어찌보면 난 의미부여도 많았다. 내 방식의 단점은 내 느낌따라 걸러낸 사람 중에도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걸 놓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냥 난 모두를 면접하듯, 모두에게 면접 당하듯 살아온 걸까. 각자의 채점표를 자기 손에 쥐지 못하고 서로에게 내어준 꼴로?


높은 자기애든 낮은 자존감이든 돌아볼 필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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