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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Oct 12. 2016

열네 번째 잔 - 나는 지금 어디쯤에 있을까

세상엔 참 재밌는 것들이 많아. 사랑이란 이름으로 불륜을 저지르고 로맨스란 이름으로 친구를 배신해. 트라우마란 이름으로 위로를 강요하고 상처입기 싫어서 상처를 주는 걸 선택해.


상처도 스펙처럼, 음흉함을 셈이 빠른 재치인 것처럼, 순진해져서 헤벌쭉 하는 것보단 간사하더라도 득 보고 사는 게 낫다는 자위를 허락해야해. 이걸 피한다면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겁쟁이에 순진해빠진 어린아이인거래.


그렇다면 사실 난 좀 무서워. 세상이 말하는 어른은 뭘까. 사람들은 얼마나 더 큰 어른이 될까. 누가 그들을 어른으로 내몰고 있는 걸까. 아무도 자라는 사람이 없는데 이미 다 자란 어른들만 차고 넘치잖아.


가장 흔한 그들의 말은 어릴 때 아파봐서 상처에도 내성이 생겼대. 이제 웬만한 거엔 아프지도 않고 안 될거 같은일엔 시도조차 하지 않게된대. 흥미가 그냥 뚝, 뚝 떨어진다나. 잘 나오던 수도가 갑자기 끊기는 것마냥 꼭지를 반대로 틀어서 잠가버리는 거지. 조금만 더 틀면 콸콸 나올지도, 따뜻한 물이 터져 나와서 목욕을 신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근데 말야. 그건 내성이 생긴 게 아니라 아프기 전에 손을 떼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아예 만지지를 않는데 아프긴 하니? 안 아픈 게 당연하지. 그걸 내성이라고 거들먹거릴 거 없어. 그냥 인정하면 돼. 난 겁도 많고 용기도 없는 사람이라고. 용기 없다고 인정할 용기조차 없는 사람이라고.


내 생각, 내 느낌 간직하며 자라갈 수 있을까? 나는 어디쯤에 있을 때 가장 빛날까? 빛나던 날들을 그저 한 번의 돌아봄으로 그땐 그랬지 하고 웃음 몇 번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난 얼마나 더 빛날까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난 아직 동화 속에 살지만, 아주 아주 비겁하고 착실하게 현실을 챙겨가며 살아가는 이상주의자지만 적어도 더러운 것에 쿨해지긴 싫어. 무서운 것에 무섭다고 말하고 싶고 적어도 한 번이라도 만져본 후에 아프다고 말하고 싶어.


그렇게 난 또 키 160에 맞는 옷을 입고 사이즈 230에 맞는 운동화를 신어. 절대 커지지 않는 키와 발에 만족하면서 그렇게 늙어가. 소박하게 비겁하게.


여기가 지금 내가 있는 곳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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