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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Nov 16. 2016

스물 일곱번째 잔 - NICK KNIGHT 사진전

의미 없는 세상의 '경계'

NICK KNIGHT(닉 나이트)의 사진전을 다녀오다

     

예술가들은 ‘경계’에 주목한다. 항상 생각했었다. 그들은 왜 항상 ‘넘나듬’과 ‘경계’에 집착을 하는지. 이번 닉 나이트의 사진전도 그랬다. 회화와 사진의 경계, 패션과 예술의 경계,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경계,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경계, 피부색의 경계, 몸이 성한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경계, 이성과 동성의 경계, 그리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 닉 나이트는 이 모든 경계를 허물지 않았다. 경계가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넘나들 뿐이었다. 오히려 그의 그러한 시도가 나에게는 더욱더 경계의 무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대림미술관에서 (2016. 10. 06~ 2017. 3. 26) 전시중인 그의 사진전에는 반드시 사진이라고 보이지 않는 작품들이 다양하게 있었다. 사진은 물론이고 조각품도 있었고, 영상도 있었고, 그림도 있었다. 이렇듯 그는 기존에 있던 형식을 뛰어넘어 새로운 발상으로 새로운 시각의 물음표를 던지는 작품들을 여럿 선보였다.

     

(그림은NICK KNIGHT의  Red Bustle, Yohji Yamamoto, 1986)


기억에 남는 작품(Red Bustle, Yohji Yamamoto, 1986)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사람이 긴 옷을 입고 서있는 모습인데 인상적이었던건, 그 뒷모습으로 붉은색 레이스와 같은 천이 흐드러져있는 모습이었다.


일단 이 작품은 사람을 나누지 않았다. sex(생물학적성별)로도, gender(사회적성별)로도, 성격과 성향으로도, 나와 너로도 나누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분간을 한다는 것이 별 의미 없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감상해도 되는 것처럼 자연스레 느껴지는 감정에만 집중하면 됐었다. 작품 속 인물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어두운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 뒤로는 붉은 레이스가 아래로 흩날려있는 것을 봐서 영화 ‘블랙스완’이 생각났다.(선과 악을 동시에 지닌 사람. 절대 나눌래야 나눌 수 없는 인간 안에 있는 복합적이며 모순적인 성향.) 닉 나이트는 이러한 것들의 경계를 허물지 않고 하나의 필름지에 하나의 작품으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그의 작품 중에 장애를 가진 모델들을 섭외해 오히려 장애가 있는 몸의 부분을 부각시켜 만든 작품도 있었다. 세 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사진 속 모델들은 현실 속 생활에서도 장애를 끊임없이 극복하고 전혀 개의치 않아하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다리가 없어도 육상선수로 활동을 하고, 무용수로도 활동을 한다. 이렇게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 안에 있는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대해 문을 두드리고 그러한 편견이 정말 잘 있는 게 맞는지, 올바르게 자리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물음표를 던진다. 굳이 경계를 허물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드러낸다고 해야하나? 그는 꽤 용감하고 무던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는 본인을 photographer(사진가)라기 보단 image-maker(이미지작가)라고 칭했다한다. 그는 존재하고 있는 사물의 형상을 담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던 사물의 형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또 다른 제 3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사람인 것이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빈틈, 희미한 경계를 구석 구석 파고들며 결코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그것들을 전한다. 그래서 패션 사진이라 칭한 작품에도 괴기한 장신구와 감정을 알 수 없는 모델의 눈빛을 표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모호하고 난해한 예술이라기보다 힘을 들이지 않고도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끔 해주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또한 그는 이제 더 이상 패션이 잡지에만 정적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바뀜에 따라 영상으로도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림미술관 4층에는 그의 작품이 영상을 통해서도 소개된다. 일상과 가장 밀접해있는 예술인 패션. 그에게 있어서 패션도 또한 움직이는 생물만큼이나 소중한 소재거리였던 듯했다.

     

우리가 제각기 설정해놓은 경계를 넘어서, 그는 사물의 여러 가지 측면을 보려 관심을 기울였고 그 결과 우리에게 또 다른 물음표를 던지며 새로운 감정들을 느끼게끔 해주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잔인하고 위협적인 것은 불쾌해하며 피하고 싶어 하는 인간들에게, 그럼에도 이상하게 걸음을 멈춰 그것을 주시하고 싶은 오묘한 감정을 느끼는 인간들에게, 그는 과연 세상의 경계가 의미 있는 것이라 말하는 걸까.

     

어쩌면 예술은 경계가 있는 것을 알고, 결국엔 그것을 뛰어넘어 그 위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사람이 힘껏 앓은 후 낳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니면 예술이라는 것도 사실은 어떠한 정의도 필요하지 않은 것일 지도 모르고. 신이 아닌 이상 결국엔 나와 너의 구분은 어떤 의미도 없음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난 예술이란 바라봐주는 사람이 있기에 탄생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본다. 느리게 가는 사람, 조급하지 않은 사람,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본다. 경계와 빈틈, 그 사이 보이지 않는 것들을. 그리고 그것들을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예술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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