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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Dec 19. 2016

서른 여섯번 째 잔 - 매일 글쓰기

주제는 '물려받다'

요즘 매일매일 글쓰기를 하고 있어요! 매일 주제가 주어지면 조금씩이라도 발췌한 것 같은 짧은 글귀나 심리묘사를 쓰고 있어요:) 이 글의 주제는 '물려받다' 입니다.


                              -물려받다-


  나는 엄마의 생각과 아빠의 생활을 물려받았다. 한사코 남 앞에선 머리를 조아리는 일을 해선 안 된다던 아빠와 머리를 조아리더라도 굳은 심지로 그 상황을 밟고 일어설만한 사람이 돼야한다던 엄마. 행위가 중요했던 아빠에비해 조금은 더 힘들지도 몰랐던 엄마의 방식이 오히려 내겐 더 맞았다.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자꾸만 안으로 들어가려는 외탁의 습성 덕분에 난 언제나 망설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삶의 터전이랍시고 나를 비치시켜 놓은 곳은 더 나아가지 못하는 발걸음 위였다. 그렇게 난 어제 보다 오늘 더 망설였고 내일 먹을 겁을 오늘 미리 먹고싶어하는 사람이었다. 반대로 삶의 모든 부분에 자라난 겁이 언젠가 나를 먹어버리고 말것이라는 꽤 위험수위가 높은 생각도 했었다.
 삶에 있어서 이리도 망설이는 내가 사랑이라고 대담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이것마저 엄마의 생각을 닮아 항상 두드려보고 사랑에 빠지는 습관은 빼놓지 않았다. 나아가지 못하는 사랑의 탓을 내가 아닌 상대에게 두기도 하면서 끝까지 비겁하게 나를 속일 명분만을 만들어내기에 급급했던 적도 있었다.
 상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이별뿐만이 아니었다. 사랑의 시작과 과정에도 모든 책임은 상대에게 있었으며 이런 수동적인 관계에서 내가 얻을 것이라곤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아주 작은 안전함뿐이었다. 사랑을 주는 것도 상대여야했고 사랑을 유지하고 끝내는 것 또한 상대여야했다.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손을 댈 수 없었기에 손을 대선 안됐다.
 우습게도 그런 사랑 안에서도 배우는 것은 있었다. 책임 없이 사랑 받고 있다는 여유로움과 언제든 놓더라도 내가 사랑을 받았었다는 사실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기에 때로는 만들어진 자존감까지 챙겨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난 성숙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사랑 위에서 이루어진 성숙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난 나를 사랑해줄 누군가가 없으면 결코 성장할 수 없는걸까. 나 혼자서는 안 되는걸까. 그렇다면 그 사랑이 끝난 뒤엔 또다시 연약해진 모습으로 회귀하는 걸까.
 야속하게도 그 성숙이란 것은 사랑의 진행중에만 나타날 수 있는 한시적인 모습일지도 몰랐다. 누군가에게 받기만 하는 사랑 위에 세워진 여유와 세련됨이란 사랑이 끝난 후엔 더 큰 상실감으로 자리잡아 극심한 추레함을 남기고 떠난다. 그 추레함의 이름은 겁쟁이다. 사랑을 부질없다고 믿게 되는 지나친 현실감각과 믿을 사람 없다는 염세주의적인 겁이 생겨난다. 받기만 하는 사랑 위에 세워진 자존감이란 언제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빈곤한 시인의 시 한줄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난 망설이는 사람이었다.


(매일 글쓰기는 종종 올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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